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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남자는 오늘 또 헤어진다. [6]
작성자 작네
번호 28857 출처 창작자료 추천 4 반대 0 답글 6 조회 263
작성시간 2019-11-07 02: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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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오늘 또 헤어진다.
여러 해 전과 다를 것 없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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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닫고 있는 창문 틈 사이로 기어코 들어온 시큰한 바람이 이불 속으로 스멀스멀 들어간다. 남자는 머리끝까지 덮은 이불 속에서 손만 불쑥 내밀더니 휴대폰을 잡고 이불 속으로 넣는다. 7 : 59. 알람이 울리기 1분 전 미리 떠지는 눈. 오늘도 여느 날들과 다를 것 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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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미리 눈 떠진 1분을 아까워하며 침대에서 유튜브를 키려다가 약속을 생각해내고 침대에서 내려온다. 일상적 게으름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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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상의를 탈의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남자에게 설렘보다 두려움이 먼저였던 것 같다. 그래도 남자는 어려운 탈의를 한다. 기특하다. 남자는 항상 그랬다. 시작하기는 두려워하고, 끝을 내기는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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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12. 다 씻은 남자는 지저분한 방을 한번 둘러본다.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패딩을 들추니 머리카락이 널브러져 있고, 한쪽 구석에는 꽤 지난 사건, 사고나 전하는 신문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고, 선물받은 로션은 이미 다 사용해도 못 버리고 있다. 남자는 애정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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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00. 남자는 그냥 나오지 않았다. 몸을 단장한다 해도 일찍 눈 떠진 1분이 아까워서였는지, '이쯤에 출발해도 되겠지.' 하는 시간까지 있다가 출발한다. 그 시간 동안 별로 하는 건 없다. 글도 쓰고, 유튜브도 보고, 인터넷도 한다. 그렇게 '이쯤 되겠지.' 하는 시간이 10 : 0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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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12. 약속 장소인 한 카페에 걸어가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금방이지만 남자는 걷는 것을 더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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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20. 남자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남자의 출발시간은 생각보다 잘 맞아떨어진다. 오히려 조금 일찍 도착한다. 10 : 30까지 였던 약속시간은 가까워지지만 오는 사람은 살짝 늦고 있다. 남자는 늦는 것에 별생각이 없다. 자신의 글에 보완점이나 찾으며 기다린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걸 메모하거나 사색에 자주 잠겼었다. '딸랑' 출입문 종소리와 함께 그녀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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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꼬리가 올라가고 가느다란 눈이다. 그녀가 살짝 흘겨보거나 아래로 내리깔아본다면 충분히 거만해 보일 수도 있는 강한 눈매다. 남자는 그런 눈을 좋아했었다. 남자는 말을 참 잘했었다. 직설적인 말인데 듣기 싫은 말은 없었다. 단순히 마음에 꽂히는 말이 아니라 스며드는 말이었다. 화살이 아니라 갑자기 들어온 강한 향 같았다. 남자의 향은 처음만 견디면 계속 찾게 됐다. 남자가 웃는다. 그녀도 웃는다. 새로운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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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20. 눈이 온다고 했는데 하늘은 맑고 어느 정도 추위만 감도는 날씨다. 남자는 날씨가 좋아 보인다고 하는 것 같다. 나가자고 손짓한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일어선다. 그녀의 웃음은 해맑음과는 거리가 멀고 홀리는 듯한 입꼬리와 눈꼬리만 올라가는 웃음이다. 반대로 남자의 웃음은 천진난만했다. 해맑고 신났다. 저런 웃음은 어려 보이지 않더라도 어려 보일 것이다. 웃음만으로 어린아이가 보였다. 세상 천진난만한 웃음은 괜한 주변인들까지 행복하게 했다. 대조되는 웃음의 만남이다. 어느 정도 행복해 보이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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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13. 날씨가 많이 쌀쌀하고 점심시간도 되어서 둘은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가츠동 집에 들어간다. 일본 음식을 좋아했던 남자였다. 아니, 일본 음식의 감성을 좋아했다. 남자는 많이 먹었지만 작은 음식의 감성을 좋아했다. 맛은 뒤따라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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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03.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먹은 점심이 끝나갈 때쯤 13 : 20의 영화가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둘은 영화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항상 첫 데이트는 설레지만 남자는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들은 남자가 낯도 안 가리고 빨리 친해지는 외향성 짙은 사람으로 본다. 남자는 떨고 있고 마음의 선을 넘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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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팝콘은 이에 껴서 잘 먹지 않았다. 불편함 없는 나초를 더 좋아했다. 그녀는 아직 남자를 잘 모른다. 그녀는 영화를 사준 것에 고맙다며 팝콘을 사 왔다. 남자는 먹기 힘들어하는 음식이라도 잘 먹었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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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10. 영화가 끝났다. 뜨뜻미지근하고 어떤 큰 임팩트도 없던 것은 영화에 집중이 잘 안 돼서 그런 거 아닐까. 남자의 사랑이 시작하는 걸까. 하지만 남자는 시계를 보더니, 오늘 재밌었다며 다음을 기약하고 데이트를 끝내려 한다. 그녀는 아쉬워하며 넌지시 헤어짐을 끌려 하지만 남자는 눈치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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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럴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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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즐거웠어. 휴일이 같아서 다행이다. 다음에 더 맛있는 곳에 가자. 중요한 일 없었으면 더 있었을텐데 아쉽네." 그녀의 카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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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시간을 확인한다. 해맑음이 사라진 무거운 웃음을 짓고는 집과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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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00. 그는 시외버스를 탄다. 그의 발걸음은 한 걸음 한 걸음 묵직한 운동을 한다. 45분이나 걸리는 시간을 달려서 그가 온 곳은 추모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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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년전 교통사고로 죽었다. 오늘은 내 기일이다. 그리고 난 그의 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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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은 억울함 없는 삶이었지만 그가 보는 앞에서 죽은 것이 미안했다. 죽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알 게 됐다. 영혼은 듣지를 못한다. 강제 관음증 환자 마냥 볼 수밖에 없다. 또 영혼은 자신의 기일에만 일어난다. 내가 죽은 지 3년이나 됐지만 난 3일밖에 안 잤다. 난 고작 3일, 그는 3년을 날 만나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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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상을 유독 잘 했었다. 상상이라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는 상상했었다. 서로의 상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상상의 반복에 난 어느 순간부터 상상에 잠겨놓고 내가 어떤 상상을 했는지 아무 말도 없다가, 한마디 툭 내뱉는 요상한 습관이 있었다. 그때도 그에게 그랬던 것 같다. 잘 기억도 안 나는 상상이지만 내가 했던 말은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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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그날만 나를 슬퍼해 줘. 매일 슬퍼하는 널 보는 건 좀 지겨울 거 같아.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털어버리면 그거 나름대로 서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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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00. 시간은 벌써 추모관을 닫을 시간이 됐다. 어둑어둑해진 하늘은 구름들이 많이 끼어있다. 그가 걸어 나온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를 부둥켜 안고 어떻게 3일이나 나를 안 보냐고 어리광 부리고 싶다. 또 이제는 그만 나를 잊으라고, 새로 만나는 그녀와 행복하라고 말이라도 건네주고 싶다. 죽어서도 나는 내 마음을 모르겠다. 너는 어떻게 나를 그렇게 잘 알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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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한편에도 없는 상상 때문에 그는 매년 나를 본다. 아침에 차가운 바람이 이불 속을 뒤집고 들어가면 그가 깰 것을 알았기에 창문을 꽉 붙잡았다. 그래도 깨버린 그를 보고서는 난 관음증 환자마냥 그의 하루를 본다. 아직도 내가 사고 난 소식의 신문, 내가 사준 로션, 겨울에는 춥다며 상의 탈의하는 걸 싫어하는 자잘함, 자주 빠지는 사색, 문득 생각난 것의 메모, 느긋한 게으름, 팝콘은 이에 껴서 싫다는 사소함까지 그에게는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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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메모장을 킨다. 그는 지난 3년간 똑같은 다짐을 한다. 오늘 헤어진다고. 다음에 또 보자고. 그의 헤어짐은 다음 날 다시 안녕하고 볼 수 있는 작별 인사일 뿐인가. 나에게는 하루뿐인 내일에 그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의 1년에 내가 하루만 있길 바란 것이 내 하루에 그가 가득 차있다. 이건 너무한 불공정 거래잖아. 이런 어리광도 부릴 수 없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
그가 하늘을 본다. 눈이 운다. 나도 목 놓아 그 앞에서 운다. 운도 물을 떨어뜨린다. 꽁꽁 얼리고픈 물은 시큰하고 뜨겁게 데워져 완전히 얼지도 않은 체 하얗게 쏟아낸다. 나를 바라보고 말하던 능구렁이 같은 눈웃음에 키스하고 싶다. 안타깝지만 그는 울고 또 운다. 눈웃음 없는 눈 위로 하얗고 미지근한 결정 하나 살포시 얹힌다.
:
내 하루를 다 가져가 놓고 너는 하루만을 내놓는구나.
이제는 1년 중 오늘만도 아파하지 마라.
우리 이제 이별하자.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내가 펑펑 쏟아지게 매일매일 이별하자고 눈으로 말할 테니, 우리 제발 오늘 헤어지자. 사랑한다. 너도 이제 사랑해라. 나의 눈을 닮은 그녀와.
:
내일 내가 눈을 떴을 때, 너의 창문이 꼭 닫혀서 서늘한 바람 하나 없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자고 그 게으름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 네가 나를 다른 기억으로 덮었으면 좋겠다. 이런 내 어리광을 받아줬으면 좋겠다.
:
:
나는 참 재수 없는 날이었다.
내일의 나는 헤어지지 못하겠지만 그는 헤어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날. 그날만큼은 매일 눈을 내려줄게. 이제 정말 안녕. 눈웃음을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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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SC1815
잘 읽었습니다!
2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11-07 19:23:43
작네
감삼다!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11-07 19:49:37
이런호구년이
대단한글이에요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11-22 00:16:27
작네
감삼다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11-22 16:17:53
꾸꾸루꾸
어라...어째서...콧물이...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12-08 13:44:11
작네
병입니다 병원으로가시죠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12-08 15: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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