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단편소설] 양주유랑기 [2]
작성자 Mr사쿠라
번호 40356 출처 창작자료 추천 4 반대 0 답글 2 조회 134
작성시간 2019-09-11 22: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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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전에 중원을 처음 나와 양주라는 도시를 여행할 때 일입니다.

양주는 중원 무림에서 좀 떨어진 중소도시로써, 맑고 아름다운 하천이 흐르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중원에서 무공을 연마한 무림인들이 서쪽으로 나갈 때면 꼭 들르는 도시이죠.

보십시오. 저 우거진 삼림을. 특히 여기 운치 있는 대나무 군락 한 가운데 홀로 앉아 있노라면 시상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청주를 한 잔, 탁주를 한 사발 마시면 그야말로 무릉도원의 신선이 된 기분입니다.

양주의 번화가로 가 보면 주막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이 거리의 중심에는 양주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있습니다. 탁자에 앉은 네 명의 사내의 동상이죠. 얼추 백 년도 전에 청동으로 주조된 이 동상에는, 과연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요?
꼭 20년 전이었습니다. 양주에 도착했던 건 중원의 서문에서 아침깨나 나와 하루 종일 걸어가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주막에 짐을 풀고자 이 거리에 나왔었죠. 그리고, 이 동상을 발견했습니다.

정사각형의 청동 탁자에는 친구로 알려진 개성 넘치는 사내 넷이 앉아 있었습니다. 지긋한 나이의 노인, 허리에 검을 찬 미려한 공자, 짐승과도 같이 야성적인 거한, 기묘한 인상의 중늙은이.

허나 그날 그 탁자에는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다섯. 청동이 아닌 진짜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수북한 수염과 눈썹이 눈까지 가려 나이를 쉬이 가늠키 어렵게 하는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봇짐에서 새하얀 도자기 호리병을 하나 꺼내더니 자신의 금방 빚은 회갈색 잔에 한 잔, 동상들의 반짝거리는 청동술잔에 각자 청주를 한 잔씩 따라주었습니다.

“자, 자, 천세를 누리세, 만세를 누리세. 우리 모두 죽고 나면 못 노나니. 지금 누리지 않으면 언제 누릴꼬? 자, 자, 사양 말고 드세. 벌컥벌컥 드세.”

노인의 노랫소리와 쪼르르 따르는 청주의 줄기가 아름다운 폭포소리가 되어 제 귀를 적셨습니다. 정겨운 술상을 보니 삼십여 년 전, 아니. 당시를 기준으로 십여 년 전 돌아가셨던 저희 조부님이 무심코 생각나 버렸습니다. 어느덧 정신이 팔려 반 시진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자 염소수염을 빼죽 기른 사내가 어느새 제 옆에 다가와 있지 뭡니까.

“이 보우.”

그가 제 어깨를 쿡 찌르며 불렀습니다.

“아, 예.”

저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려 그와 얼굴을 마주보았습니다.

“방을 찾으슈?”

“예.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 집에 오슈. 저 영감에 대해 알고 싶지 않수?”

양주 사람들은 뛰노는 어린애부터 관뚜껑 밑의 시체까지, 다리 밑 거렁뱅이부터 관아의 사또까지 사람 속을 항아리 속 보듯 들여다보는 도인이라더니, 그 말이 꼭 들어맞더랍니다.

저는 그 사내의 주막에 짐을 풀고 마당의 툇마루에 앉아 그와 함께 술을 들이켰습니다. 사내가 말하는 영감네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한 50년 전일 거유. 꼬박 내가 6살 때니까 말이제잉. 거시기 마교(魔敎)라고, 북방에서 온 오랑캐 집단이 있었수. 갸들은 흉노의 지파라는디, 좌우지간 사술을 써서 무림이고 황실이고 다 자기들 천하로 만들려고 했다는 거 아니우. 글쎄 그 숭악한 놈덜이 패악질을 부리니께, 무림서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우. 바로 저 영감쟁이지. 지금은 헤까닥 해서 저러고 앉았지만.”

“저 영감님이 어떤 분이신데 말입니까?”

사내는 무미건조하게 깜짝 놀라는 표정을 취하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아니, 총각은 무림에 발을 들인지 얼마 안 되셨나. 그 이름도 모르우? 휘광천존(輝光天存) 주도문(朱道門)을.”

나는 당시 중원 밖의 풍문에는 썩 밝지 못하였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고 넘어갔습니다만 그 주도문이란 사람은 실로 대단했다는 모양입니다. 취무 재현강호, 석파천경권, 폭렬구극권, 색명음령권....... 강호인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는 전설의 무공을 전부 깨우친 사람이었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단한 기술은 휘광지(輝光指)였는데, 기가 응축되어 번쩍이는 손아귀로 무언가를 움켜쥐면 못 부수는 게 없었답니다.

“저 영감은 당신의 부하 사천왕과 함께 마교를 무찌르러 떠났었다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동료들도 만만치가 않아.”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은 얼마나 대단한가요?”

“암, 휘광천존보단 한 수 아래였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선 참으로 대단했다우. 우선 사왕쟁패(獅王爭霸)라 불리는 구 대협. 키가 열 척이나 되는 거한이었수. 대협네 고향에는 천축에는 ‘코끼리’라는 짐승이 있는데, 그 짐승의 동작을 연구한 무공을 썼다지 뭐유. 그 사람이 걸어 다닐 때면 땅이 어찌나 요란이었는지. 어린 시절엔 그 사람 발소리가 아주 쿵쿵 울려대는 통에 넘어질 뻔 했다우.”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열 척 되는 사람이 걸어 다니면 진짜로 땅이 울릴까요?

“그리고 천검절도(天劍絶刀)라 불리는 천도 존자. 천도 존자는 경공술을 그리도 잘해서 다리가 은색이라는 말도 있었수. 별명답게 일찍이 검술에 신동이라, 그 나이에 중원제일검 칭호를 얻고, 저 멀리 동녘 바다 건너 왜나라에서 온 패도란 검객도 단칼에 베고 다녔다우. 정말로 대단한 검객은 상대를 벤 칼에 피가 남질 않는다고. 그 사람은 더했수. 과일을 베고 나면 칼에서 단맛이 안 났으니까. 허허허.”

“허허. 그것 참 재미있는 말씀이십니다.” “그 뿐이우? 소오강호(笑傲江湖)라고, 서역에서 온 사내도 있었다우.”
나는 그 기묘한 인상의 청동조각상을 떠올렸습니다.

“그 사람 이름은 아십니까?”

“서역식 이름을 우리말로 음차해서, 월터(月攄)라고 했다우. 이름 한 번 멋지지 않우? 월터. 달의 터라니. 서역서는 무공도 서역답게 특이하더라우. 구불구불 몸을 비트는데, 사람이 아니라 귀신같더라 이 말이우.”

“그럼 월터가 역시 그 4천왕 중에서 제일 강했겠습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우. 역시 사천왕 중 최강은 동방불패(東方不敗), 수교(修交) 선생이우. 그 사람은 휘광천존의 스승 되시는 분이시지. 중원 동쪽
에서 그분을 무공으로 이기는 사람이 없었다우. 휘광지의 전신인 일광지(日光指)를 전수하시구, 본인은 또 흑암지(黑暗指)라고 따로 무공을 연마하셨으니.”

“그럼 그분이 휘광천존보다 강한 건가요?”

“수교 선생이 노쇠하셔가지구, 결국에는 휘광천존께서 이겼수. 아무튼 이 다섯이 마교에게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다우. 굴지의 요새라는 마교의 총본산은 이 다섯이 출동하자 삽시간에 불타 버렸지. 거기서 끝나면 소설의 한 구절 같았수. 하지만.......”
그는 말끝을 흐리더니 갑자기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얘기를 다른 이들에게 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익숙한 슬픔이었습니다.

“마교의 교주가 죽기 직전에 건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우. 다섯 명이 저잣거리에 앉아서 연회를 벌일 때쯤, 단단하게 굳어버려 저 동상이 돼버렸수. 휘광천존께서는 그 때의 충격으로 옛 동료들을 잊지 못하시구 퍽하면 술을 기울이신다우......”

그렇게 나와 사내의 술상이 침울해졌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대문을 열고 걸어 들어왔습니다. 아직 댕기머리를 풀지도 않은 작은 꼬마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있던 건, 노쇠하신 휘광천존 주도문 선생이었습니다! 눈물이 절로 북받쳐 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선지, 아랫도리를 훌러덩 벗고 계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부지, 할아부지가 또 바지에 쉬하셨어유. 기저귀 좀 갈아주셔유. 지는 허리띠 푸는 시점에서 심이 부쳐유.”

“뭐여? 알겄다. 여기 이 손님과 잇바구 좀 나누고 있어라. 아부지! 따라오셔유!”

휘광천존은, 아니. 주막집의 할아버님은 그렇게 사내를 따라 뒷간으로 향했습니다.

“손님, 아버지 잇바구 재밌었슈? 재밌었으면 쬐까 삯 좀 더 줘유. 아니문, 내 잇바구도 들어볼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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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과일과
사왕쟁패 설명할때 '대협네 고향에는 천축에는' 오타인거같아요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9-12 16:11:17
과일과일과
창작추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9-12 1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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