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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야산에 달이 뜨면
작성자 팬탐
번호 79048 출처 창작자료 추천 18 반대 0 답글 0 조회 753
작성시간 2019-11-28 17: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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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 생활을 포기했다. 조부모님이 살아생전 거주 하시던 강원도에 돌아가려고 결심했다. 그곳이라면 강아지도 맘껏 뛰놀게 해줄 수 있고, 좀 더 편안하게 여러 가지 준비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올해 첫눈이 내리던 날, 이삿짐 차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가는데 집 앞에 웬 택배상자와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잘 부탁합니다.”


택배상자 안에는 갈색 푸들 새끼 한 마리가 박스 안에 웅크린 자세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한파의 추위 때문일까 처음 보는 낯선 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어서 일까. 오들 오들 떨면서도 눈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별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이 강아지만 안고 집으로 다시 들어가 대충 안 입는 옷을 꺼내서 덮어주었지만 여전히 떨고 있었다.


“너도 주인 잘못만나서 고생이 많다. 저 작은 게 뭔 죄라고... 으휴”


나는 짐 정리를 하면서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와 카페를 돌며 ‘오늘 이사를 해야 하는데 누군가 버리고 갔습니다. 키워주실 분 찾습니다.’ 라는 글을 올렸으나 응원의 댓글 외에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사실 나도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기에 딱히 분양을 알아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난감했다.

바깥에 그냥 두었으면 얼어 죽었을 것이고... 내가 잠시 데려오긴 했으나 감당은 못하겠는데 보낼 곳도 없고... 여러 고민을 하다가 그래 뭐... 차피 산동네니까 그곳에선 눈치 안보고 키워도 되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결국 내가 키우라는 하늘의 뜻 이겠거니 하면서 안 되는 형편에 열심히 키웠다.



(녀석은 상당히 똑똑했지만 사람에게 버림 받았다는 걸 알았던 건지 언제나 내 옆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혹여 잠을 자다가도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낑낑대며 쫓아온다던지, 산책을 나가도 다른 사람이나 강아지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우직하게 내 곁을 지켰다.

한번은 내가 폐렴인줄도 모르고 집에서 혼자 끙끙 앓던 적이 있었는데 녀석이 집을 뛰쳐나가서 동네 주민 한분을 모시고 와 병원을 간적도 있었다.

“아유 뭔 놈에 강아지가 막 쫓아와서 죽어라고 짖더라니! 아이고 이 사람아 미련하게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라며 휴대폰을 꺼내들 힘도 없는 나를 대신해서 119에 전화를 걸어 나를 병원에 데려다 주셨고, 간간이 며칠 동안 집에 찾아와 내 상태를 살펴봐주신 아주 고마운 분이셨다.

게다가 녀석은 우리가 지내던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그곳 까지 내려가 용케도 아주머니를 모셔 다시 집을 찾아올 정도로 영리했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 거의 주인 없는 집이 되어버린 그곳은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이삿짐들을 대충 툇마루 위에 올려놓고 바뀐 환경을 조금이나마 빨리 익숙하게 해주려고 하네스를 입혔다. 동네에 들어오면서 문득 봤지만 집 뒤에 있는 산이 참 멋있었다.

당연히 산책로가 있겠거니 하면서 강아지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당시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난 뭣도 모르고 루키를 데리고 산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다니긴 한 모양인지 길이 나 있긴 했으나 보통 산책로라고 보기엔 엉망이었다. 그래도 루키가 좋아하니 된 거지 뭐. 하면서 산으로 산으로... 올라갔으나 막상 정상에 올라보니 30분이 지난 오후 5시가 되어 있었다.


숨도 고를 겸, 챙겨온 물통을 꺼내 나 한 모금, 루키 한 모금 목을 축이며 머리까지 띵 해지도록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열심히 사진도 찍고 부모님께 전화도 하고 필요한 물건은 뭐가 있는지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살피던 중 문득 깨달았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것이다.


“산이라고 금방 어두워지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내려가면 되는 거니까. 하며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올라왔던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 생각보다 너무 어두워져 있었다. 낮에 보았던 길이 이 길이 맞는지, 여기가 아닌가...? 나는 지금 왜 길을 헤매고 있지? 생각을 하며 내려갔지만 도저히 길이 보이질 않았다. 산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야간산행은 처음이거니와 불빛 하나 보이질 않아 어디가 어딘지 조차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안되겠다 싶어 나는 119의 도움을 빌려보려고 휴대폰을 꺼내들어 신고를 했다.


“119입니다.”


“아 제가 산에서 길을 잃어버려서요...”


“산에서 길을 잃으셨다는 말씀이시죠. 혹시 주변에 보이시는 게 없으신가요?”


“네... 불빛도 안보이고 그냥 나무만...”


“우선 신고자 분 현재 계신 곳에서 500M 정도 이동하시면 학교가 하나 있습니다. 현재 이쪽에서 화재가 심하게 발생해서 모두 출동 중이니까요. 멀리서도 보이실 겁니다. 그쪽으로 천천히 내려오시겠어요?”


“제가 화재현장으로 가라고요...?”


“가까이 진입은 하지 마시고 최대한 그쪽은 피해서 하산 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아...네 일단 알겠습니다...”


화재가 나는 방향으로 내려가라니... 게다가 그렇게 큰 화재라면 여기서도 보이지 않을까 하며 참으로 황당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였지만 일단 천천히 내려가 보자 싶어 휴대폰으로 플래시를 비춰가며 산길을 내려갔다. 발은 동상에 걸릴 것처럼 아팠고, 무엇보다 손이 너무 시렸다.

무슨 바람이 불어 도착하자마자 산책을 가려고 했는지 내 자신을 자책하며 길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문득 저 앞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목소리. 한명은 아니었다.


아주 예전에나 쓰던 똑딱이 버튼이 달린 후레쉬를 들고 산을 오르던 그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쳐다보며 한동안 말을 못하는 듯 보였다.


“저.. 저기... 제가 지금 길을 잃었는데 어디로 내려가야 돼요?”


한밤중에 그것도 산길에서 웬 남자가 나타나 말을 걸어오니 많이 놀랐던 모양이다.


“즤이 학교 지금 불났어요! 도와주세요!”


할 말만 하고는 바쁘게 산으로 올라가는 뒷모습만 보였다. ‘진짜 불이 크게 났나보네...’ 생각하다가 나는 루키를 안은 채 다시 길을 나섰다. 하지만 한참을 내려가도 학교는커녕 불 연기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어디있는거야?’ 생각을 하며 다시 한참을 산을 헤매다가 기어이 길을 찾아 내려갔다.


그곳엔 학교가 아닌 웬 엉뚱한 도로가 나왔지만 어쨌든 산에서 빠져 나왔으니 다행이었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몇 미터를 걷다가 오토바이를 끌고 앞서 가시던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다행히 동네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날짐승이 많아서 이렇게 밤에 다니면 위험혀!”


우리가 내린 마을 입구에는 가로등 바로 아래 자리 잡은 구멍가게가 있었고 그곳에 아직 불을 켜놓고 어르신들이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곧장 가려했으나 슈퍼 주인 아주머니께서 날 불러 세우셨다.


“학생! 일로 와서 막걸리 한잔 허고 가~ 강아지 밥도 좀 맥이고 그랴~ 산 바람을 맞아서 그런가 벌벌 떠는구먼”


루키를 보자니 날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보며 온몸을 바들 바들 떨고 있었다. 많이도 추웠겠다 싶어 나는 결국 슈퍼 안으로 들어가 아주머니께서 한편에 마련해주신 낚시의자에 앉았다.


“가만 있어봐... 학생 저~ 위에 장 씨 손주구만 그래!”


“네.. 저희 할아버지 아세요?”


“그럼 알지! 반갑구먼! 그래...! 키가 요만 했나... 늘 엄마한테 붙어 다니더만 이래 커가지고 왔구먼!”


잠시 쉬었다 올라가려고 했으나 다들 할아버지를 아는 분들이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기이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니 그나저나 산에는 왜 올라갔대? 이 밤에 길 잃으면 어쩌려고”


“아... 제가 오늘 막 왔거든요. 짐 풀어놓고 얘 산책 좀 시키려고 올라갔는데 어휴 정말 금방 어두워지더라고요. 119에 신고 했었는데 무슨 학교가... 아 맞다...”


난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내가 신고를 했던 사실이 기억났다. 엄한 곳에서 날 찾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휴대폰을 꺼내들어 119에 전화를 걸었다.


“네 119입니다.”


“아 저 아까 산에서 길 잃었다고 신고 한 사람인데요. 제가 지금은 산에서 내려왔거든요.”


“산에서 길을 잃었다가 지금은 내려오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뇨 제가 아까전에 길을 잃은것 같다고 신고를 했었는데 혹시나 산에서 저 찾고 계실까봐 전화 드렸어요.”


(지이잉 거리며 문자도착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음... 신고자 분 혹시 다른 번호로 신고하셨나요? 현재 119신고 접수는 확인이 안 되네요.”


“그래요...? 아까 통화했었거든요. 제가 있는 장소에서 5분 정도 내려가면 학교 보인다고 그쪽에 화재가 크게 발생해서 그쪽으로 다 출동한 상태라서 일단 그쪽으로 내려오면 된다고 그러셨는데...”


“글쎄요. 현재 접수된 이력은 확인되지 않고 있네요. 그리고 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하셨는데 저희가 산 은 위치 파악이 정확히 안돼서 그렇게 상세한 안내는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네 뭐 무튼 알겠습니다.”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럴 수도 있겠지 뭐. 하며 다시 슈퍼로 들어가면서 통화 도중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 했다.



‘119에서 긴급구조를 위해 귀하의 휴대전화 위치를 조회하였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끄려다가 문득 떠올랐다. ‘산에서 119에 전화를 걸었을 때는 아무런 문자가 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또 오네?’ 뭐지? 하면서 슈퍼에 들어가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저 할아버지, 이 근처에 혹시 학교 있나요?”


“이 근처는 없고~ 저 시내로 나가면 다~ 있어.”


“뭐 여고나... 분교라도... 없나요? 아까 근처에서 화재가 크게 났다고 그러던데...”


“요 근처는 온통 논밭뿐이제 뭐 학교가 있나?”


그리고 다른 할아버지께서 입을 열었다.


“일정 (일본이 침략하여 강점하고 다스리던 정치) 때 저 산 아래에 소학교가 하나 있었지라?”


“소학교요?”


“가시나들 이쁘게 꾸며서는 일본으로 보낼라고 공부를 시키는곳이라고 그러드만 순사놈들이 그냥~ 불을 질러 버렸지라...”


할아버지께선 아마도 일본에 위안부로 보내지던 여학생들을 말씀하시는 듯 했다. 그리고 그 학교는 여학생들을 꾸미고, 그곳에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학습 아닌 학습을 시킨 곳으로 보였다.


“시상에 그런 비명도 처음 들어봤어라... 온몸에 불이 붙어서는 살아보겠다고 유리창을 깨부수고 뛰쳐나오드라고...”

“그래서요?”


“고것들이 어디 살려두간디... 사정없이 뚜들겨 패다가 불이 꺼지믄 또 기름을 뚤뚤 부어서리 다시 불을 붙이고.... 시상 시상.... 그런 비명은 여적지 못 들어봤네. 근데 학생은 워디서 불이 났다고 그런 것이여?”


그리고 이어지는 다른 할아버지의 질문들이 쇄도했다. 그걸 보고도 어떻게 살아남았냐. 거짓말이다. 그 자리에 학교는 애초에 없었다. 등등 말이 많았지만 나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내가 통화한 사람은 누구고, 산길에서 만난 여학생들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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