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학과
제목 [주마등 프로덕션] 원산 이용원 가는 길 [6]
작성자 패랭이꽃
번호 79045 출처 창작자료 추천 26 반대 0 답글 6 조회 1,017
작성시간 2019-11-27 00:32:17
이전
다음
추천
반대
신고
URL 복사
스크랩
추천되었습니다.
스크랩 되었습니다.
← CTRL+C 로 복사하고 CTRL+V 로 붙여넣으세요!
   기기를 감지하여 최적 URL 로 보내줍니다.
ㆍ창작자료 :: 이 게시물이 재미 있으면 기부를 할 수 있습니다. (기부된 개념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ㆍ펌 불허용 (타 사이트 등록을 불허하며 우클릭, 드래그 등이 금지됩니다.) 개념 기부하기



죄송합니다. 공포랑 거리가 있습니다.


-------------------------------------------------------------------------------------------------------------------------------------------------------------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 동대리, 원산 이용원.

할아버지는 흥겹게 기차에 오르셨다. 최근에 본 모습 중 가장 생기 있어 보이는 모습이셨다.

할아버지는 발에 깁스를 한 것도 잊으셨는지 계단을 폴짝 뛰어오르셨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행여나 다치실까봐 조마조마했다.

물론 할아버지께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손자로서 당연히 기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 몰래 할아버지를 댁으로 모시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아신다면 노발대발하며 쫓아올 게 뻔했다.

기차에서 할아버지는 목이 마르셨는지 가방에서 사이다를 두 캔을 꺼내셨다. 그리고는 하나를 내게 건넸다.

나는 캔을 받아 따서, 다시 할아버지께 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 마디 하셨다.


“욘석아, 할애비도 다 할 수 있어.”


할아버지는 마른 손으로 사이다를 따셨다. 경쾌한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이다의 꼭지가 뒤로 넘어갔다.

나는 내밀었던 사이다 캔을 내 입으로 조심히 가져갔다. 뭔가 무안했다.


“할아버지는 노인네지, 얼라가 아니여. 노인네라 더딘 거지 못하는 게 아니여, 알겄어?”


“네, 알겠어요.”


“그래도 손자 덕에 집에 가는 구나”


할아버지가 얼굴에 주름을 드러내며 웃으셨다. 하지만 난 그 모습에 더 불안해졌다. 그래서 한 차례 더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대천 집에 완전히 가시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 그 친구 분 집에 들러서 인사드리고 다시 인천으로 갈 거예요. 안 그러면 저 진짜 아버지한테 죽어요.”


“뭔 소리여, 간 김에 가게도 열고 해야지”


“아, 할아버지 진짜”


머리가 갑자기 복잡해졌다. 괜히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천 갔다 온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대천에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를 모셔 오시고 싶어 하셨다.

아무래도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를 홀로 두는 게 마음에 걸리셨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셨다.

모두의 생각이 같았다.

애석하게도 할아버지만 빼고.

할아버지께서는 올라오셔서 같이 살자는 부모님의 권유를 번번이 거절하셨다.

대천에서 할머니와 함께 운영하시던 구멍가게와 이발소를 계속 하실 거라고 하셨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간신히 본전이나 치는 구멍가게랑 이발소에서 고생마시고, 편히 쉬시라고 했지만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일이 터져버렸다. 할아버지께서 이발 용품을 구매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나가시다 다리를 다치신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회사에서 일하시다 말고 곧장 병원으로 찾아가셨다.

그리고 그 날 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나를 데리고 다시 대천으로 내려갔다.

취업준비 중이던 나는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를 간호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인천과 대천을 매일 오가셨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생을 옆에서 지켜볼 때면, 대천에 사시는 걸 고집하시는 할아버지가 너무나 야속했다.


“이번에는 정말 안 되겠어, 강제로라도 모셔올 거야”


아버지는 정말로 그러셨다. 할아버지께서 퇴원하는 날, 깁스한 할아버지를 차에 태운 채, 곧장 인천으로 올라오셨다.

물론 할아버지와는 한 마디 상의 없이.

차 안에서부터 할아버지께서 절대 안 간다고 고집 피우셨지만, 이내 기력이 없으셨는지,

아니면 아버지의 완강한 태도 때문인지 고집을 꺾으시고 깁스한 다리만 만지실 뿐이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올라와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께서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협조적이지 않았다.

일단 식사를 좀처럼 하지 않으셨다.

엄마가 식탁에 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한 두 숟갈 뜨시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덕분에 나는 좋았다. 업그레이드 된 반찬을 맛보았으니.

하지만 할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이런 표현을 하긴 그렇지만 시들어 가셨다.

할아버지는 점점 야위어 갔고, 기력도 전보다 쇠약해지셨다. 깁스 때문에 거동도 불편하셔서 집 안에만 계셨다.

물론 가끔 나가셔도 잠깐 공원에서 바깥바람 쐬시는 게 전부였다.

하루 대부분을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으셔서 텔레비전을 보시면서 보냈다.

텔레비전도 전국노래자랑 할 때만 좋아하시고, 다른 프로그램을 볼 때는 그냥 무표정이셨다.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할아버지 모양의 가구를 들여놓은 거 같았다.

두 달 가까이 그렇게 지내다가 할아버지께서 아버지한테 부탁을 하셨다.

대천에 내려가셔서 본인 안경이랑 장부 좀 가져와야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나만 대천으로 보냈다.

할아버지는 본인도 직접 가고 싶어 하셨는데 못 가셔서 씁쓸해 하셨고, 나 역시 뜻밖의 심부름이 반갑지 않았다.





할아버지네 가게 열쇠와 위시리스트를 들고 홀로 대천으로 향했다. 괜히 시무룩했다.

분명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네, 대천에 간다고 하면 신이 났었다.

할아버지 댁에 가기 전날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방에 챙겨갈 정도로, 신이 났었던 걸로 기억한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할머니는 손주가 오면 맛있는 걸 잔뜩 주셨다.

과자, 사탕, 초콜릿 등 구멍가게의 간식들이 무한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언제나 먹고 싶은 만큼 먹으라고 하셨다.

할머니한테 받은 과자나 사탕을 들고 구멍가게 바로 옆에 있는 이발소로 가서 할아버지께서 이발하시는 것을 구경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이발하시는 할아버지 보며 과자를 먹었다.

가끔 운이 좋을 때는 이발하러 오신 손님께서 권씨 손주냐며 물어 보시고는 용돈도 주셨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뭐가 그리 못 먹여, 안달이 나셨는지 커다란 봉지에 먹고 싶은 과자를 가득 담아 주시곤 했다.

늘 그 순간이 즐겁고, 감사하고 행복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턴가,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게 귀찮아졌다.

주말에는 친구랑 놀고, 게임도 하고 싶고.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기 싫어서 이런 저런 핑계만 늘어놓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결코 싫어진 건 아닌데.





가게에 도착한 나는 웬 흉가가 턱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가 계실 때만 해도 그래도 사람 사는 집 같았는데, 두 달을 비웠다고 귀신의 집이 되어버렸다.

가게 문고리의 먼지를 걷고, 열쇠로 구멍가게 문을 열었다.

삐그덕-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렸을 때는 대형 마트처럼 보이던 구멍가게는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별다른 것도 없었다.

시골에 있는 가게라 이용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있어도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라 팔리는 거라곤 담배, 막걸리, 소주 정도가 전부였다.

찬찬히 가게를 둘러보며 할아버지의 장부를 찾았다.

오래된 서랍 안에 있었다.

뭔가 하고 펼쳐보니 검은색 사인펜으로 외상으로 물건을 사간 손님 목록이 주르륵 나왔다.

명부를 보니 윗집 김 영감탱이가 외상을 가장 많이 하셨다.

윗집 김 영감탱이에 별표 2개, 요주의 인물이라고 동그라미까지 쳐져있었다.

장부를 챙기고 구멍가게 뒷문으로 향했다. 할아버지 집이랑 연결된 문이었는데, 그곳 역시 기분 탓인지 문이 더 녹슨 거 같았다.

집으로 들어가 위시리스트에 적힌 할머니께서 생신 때 선물 해준 중절모와 더불어 옷 몇 가지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가게를 나와 문을 닫고 바로 옆에 있는 이발소를 향했다.

할아버지께서 안경집이 이발소에 있다고 하셨다.


‘원산 이용원’


하얀 바탕에 파란 글씨로 투박하게 적혀있다. 낡은 간판을 보니 어렸을 때 이미지가 그려졌다.

엄마, 아빠 손잡고 할머니 댁에 가면 할아버지와 하얀 가운을 입은 채,

늘 저 ‘원산 이용원’ 간판 밑에 서서 환하게 웃으며 손자를 맞이하셨다.

가끔은 손님 머리를 자르다 말고 나오셨는지 손에 가위를 쥔 채 나오실 때도 있었다.


“아이구, 예쁜 강아지 왔네.”


이발소에 들어갔다. 먼지가 더욱 많이 쌓여있었다. 그럼에도 가위와 빗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틈에 할아버지의 낡은 가죽 안경집이 있었다. 그걸 집어 들고 밖으로 나오자 동네 할아버지가 서계셨다.


“이게 누구여? 권씨 손자 아녀? 나 모르겄어? 나 우용 할아버지여, 야가 많이 컸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는 괜찮으시고?”


“네, 괜찮으십니다. 크게 다치신 건 아니라서”


“그럼 언제 오는지 아나? 나가 수염이랑 머리 깎을 때가 되야서”


할아버지는 턱에 희끗희끗 자라난 수염을 만지셨다.


“아마 안 내려오실 거예요. 아버지께서 이제 모시고 산다고 하셔서”


내 대답에 우용 할아버지께서는 당황한 표정을 보이셨다.


“그려? 큰일 났구먼, 지금 머리랑 수염 못 깎은 노인네들이 한 트럭인디. 그럼 오늘은 무슨 일로 온겨?”


“할아버지 짐 챙기러 왔습니다. 이제 다시 올라가려고요.”


“그려, 조심히 가, 아 참, 윗집 김 영감탱이 지난주에 초상났는데, 말은 해줘야지”


우용 할아버지는 덤덤히,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가던 길을 가셨다.


집에 도착한 나는 우용 할아버지한테 들은 대천 소식을 할아버지께 전했고, 할아버지는 내게 간곡히 부탁했다.

윗집 김 영감탱이 집에 찾아가야겠으니 도와달라고, 아버지에게 말해봤자 안 통할 거 같아서 내게 부탁하셨다.





덕분에 나는 아버지 몰래 할아버지를 모시고 아침 일찍부터 기차를 타고 대천역으로 가고 있다.

대천역에 도착한 우리는 택시를 탔다. 그리고 김 영감님집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창밖을 보며 시골풍경을 봤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순간,

택시기사의 비명과 함께 마을버스의 거대한 그림자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브레이크에 몸이 휘청거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옆에 계신 할아버지의 마른손을 꼭 움켜쥐었다.

그 순간, 온 세상이 멈췄다. 눈을 질끈 감았다.

찰나가 억겁처럼 느껴진 시간, 낯선 고요함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눈앞에는 희미한 불빛을 내뿜는 등(燈)이 팔랑 팔랑 돌아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주마등 프로덕션입니다.”


밝은 인사를 건넨 여자는 희미한 등불을 내 눈 앞에 휘휘 저으며 말했다.

어두운 공간에 은은한 등불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충분히 마음이 동요되고도 남을 순간인데 말이다.

내 멍한 표정을 읽기라도 한 걸까? 여자는 조그마한 입을 열었다.


“상영관으로 가시면서 찬찬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옅은 미소를 지어보인 그녀가 돌아서자, 연분홍색 치맛자락이 봄날 벚꽃이 바람을 타듯 빙그르 돌아갔다.


“영화관이요? 여기는 대체 어디죠?”


“고객님께서 살아오신 인생을 영화처럼 편집해서 보여드리는 곳이에요. 흔히 이런 표현하잖아요.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걸 보여주는 곳이에요! 고객님께서는 편안하게 인생영화를 감상해주시면 됩니다. 아! 여기서 인생영화는 고객님 인생에서 감명 깊게 보신 인생영화가 아니라, 고객님 인생 자체를 영화로 만든…….”


“그럼 저는 죽은 겁니까?”


갑작스런 내 질문에 침묵이 맴돌았다.

죽음이라는 것이 꽤나 떠들썩하게 일어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겸허했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가 차려주신 아침밥을 먹었었는데 그게 마지막 밥상이었다니.

그러고 보니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도 못했다.

할아버지는 괜찮으신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 있는 거였는데.

뜸을 들이던 그녀가 말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저는 그냥 주마등 프로덕션의 가이드입니다. 하하, 저희는 고객님의 인생 영상을 편집, 상영까지만 주관하기 때문에 그 외의 정보는 모른답니다. 그래도 고객님의 현재 심정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뜻에서 이 등불을 바라봐주시겠습니까?”


다시금 가이드님은 등불을 내 눈 앞에 보였다. 생일 케이크 촛불이 생각나는 은은한 등불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희 주마등 프로덕션은 고객님께서 살아오신 순간들 중 인상 깊은, 감동적인 순간들을 모아 편집해서 한 편의 영화로 만든 답니다. 저희는 그저 고객님께서 편안한 마음으로 저희가 만든 인생 영화를 즐겨주시는 것을 바랄뿐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럼 당신이 살아온 순간들을 봐주시겠습니까?”


어느새 나는 뭔가 허름한 이발소에 와있었다. 이발소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나를 낡은 이발소 의자에 앉혔다.

앞에는 가위, 면도칼, 면도크림 등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할아버지의 ‘원산 이용원’이었다.


“어, 여기는?”


“앞에 거울을 바라봐 주시겠어요?”


앞을 보니 커다란 거울이 놓여있었다. 그녀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지그시 눌렀다.


“어때요? 마음에 드시나요? 저희 주마등 프로덕션에서는 상영관을 고객님의 인생과 가장 밀접한 곳으로 설정합니다.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했지만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인생이랑 밀접한 공간이요? 근데…….”


“아무쪼록 편안한 감상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이발소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왜 할아버지의 이발소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앞에 놓인 이발소 거울에서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인생은 생각보다 느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 그 흐름을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언제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내 인생도 그렇고 남의 인생도 그렇다.

할아버지의 인생은 빠르게 흘러갔다.

첫 시작부터 내 인생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산부인과가 아닌 민가에서 태어난 점이랑,

내가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어르신들이 영화의 주인공을 할아버지 함자인 ‘권태룡’이라고 불렀다.

영화는 초반부를 지나고 있었다.

코흘리개 권태룡은 읍내를 돌다 처음 보는 이발소에서 발을 멈췄다.

하얀 가운과 반짝반짝 광이 나는 가위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머리 깎으러 왔슈?”


이발사의 물음에 태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발사의 가위놀림에 부스스했던 권태룡의 머리가 멀끔해졌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아니, 무슨 돈도 없이 이발소를 와?”


이발사의 분노에 태룡은 일해서 갚겠다는 말을 했다.

그게 할아버지와 이발소의 첫 만남이었다.

태룡은 잡일을 도맡아 했다. 청소도 잘하고 머리카락도 치우고 이발사는 그런 태룡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발 기술도 알려줬다.

태룡에게 첫 가위를 선물해 준 것도 그 이발사였다.

태룡의 첫 손님은 어린 친구였다. 긴장한 태룡은 조심조심 어린 손님의 머리를 손질했다.

시간이 엄청 걸려서 이발사한테 평생 깎을 거냐는 핀잔도 들어야했다.

하지만 그날, 그 순간 태룡은 더 없는 행복을 느꼈다.


“할아버지 머리 잘 깎네.”


영화를 보며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어느 덧 태룡은 성장했고, 자기 이발소를 차릴 준비를 했다.

이발사는 태룡에게 미군부대 근처 이발소에 자리가 났는데 거기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 추천해주겠다고 했다.

태룡은 기쁜 마음으로 미군 부대 근처 이발소로 옮겼다.

태룡은 그곳에서 영어도 배우며 미군들의 머리를 깎았다.

폴, 브라이언 등 미군 친구도 생겼다.

그러다가 미군끼리 서로 치고 받으며 싸우는 모습을 보고 무서워서 그만 두셨다.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신 원산 이용원을 차리셨다.

미군이 서로 싸우는 장면은 액션 영화를 방불케 했다.

그리고 옆에서 구멍가게를 하시는 할머니를 만나셨다.

둘은 서로 눈이 맞았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를 낳으셨다.

잘 나가시다가 갑자기 손 떨림이 심하셔서 이발 일을 못할 뻔 하셨다.

병원에서 술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 이후로 영화 속 인생 내내 술을 단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셨다.

내가 태어난 이후에 할아버지의 영화 속에 내가 자주 등장했다.

어린 내게 새우깡과 사이다를 주시며 유혹한 후 이발소 의자에 나무판자를 올려 그 위에 앉게 한 후, 머리를 잘라 주셨다.

물론 우리 엄마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내 옛 기억을 떠올리면 할아버지가 머리를 잘라준 다음 날, 인천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늘 나를 미용실에 데려가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 내 머리는 늘 짧았다.

이발소 외의 대부분은 할머니와의 추억들, 읍내를 같이 둘러보거나 같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보는,

그런 소소한 추억들이 영화에 나왔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가게에 간간히 찾아와 막걸리를 마시는 할아버지들과 면도와 이발을 하러 오는 손님들.

그 중에서도 윗집 김 영감님이 자주 오셨다.

외상을 하면서도 자꾸 와서 할아버지가 묻기도 했다.


“돈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이발을 하러 와?”


“내가 혼자 살자녀, 혼자 살다 죽었는디, 머리가 지저분하고 그러면 내 자슥들이 욕먹는다니께 갈 때 가더라도 단정히 가야혀”


그 말을 듣는 할아버지 표정이 클로즈업 되었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할아버지께서 왜 그렇게 그곳, 대천 동대리에 있는 구멍가게와 이발소에 애착을 갖는지 이해가 갔다.

40년을 하셨는데 그걸 어찌 쉽게 놓을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일어나자 내게 영화를 소개해준 그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내 뒤에 서있었다.


“권태룡씨가 아니신가요?”


“네, 아닌데요.”


“으아, 어떡하죠?”


그녀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 고객님께서 보셔야할 영상이랑 바뀌어버렸어요.”


“크게 문제가 되나요?”


“그게 원래 고객님께서 보셔야 되는 영상은 완성이 안 된 영화인데, 방금 보신 권태룡씨 영화는 완성된 영상이거든요. 근데 완성된 영화가 재생이 끝나면 그 사람은 인생이 종료됩니다.”


“뭐라고요? 처음엔 그런 이야기 없으셨잖아요?”


“그게 저희도 고객님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그런 이야기는 하질 않거든요. 게다가 고객님은 미완성 본을 보시는 입장이시고.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저희 할아버지가 이제 돌아가신다는 말씀인가요?”


“으아! 권태룡씨가 고객님 할아버님이신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일단 저희 주마등 프로덕션에서 어떻게든 수습해보겠습니다. 고객님께서는 원래 이승으로 돌아가시게 될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규칙상, 영화 내용을 제외한 모든 기억은 사라지게 됩니다.”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택시가 멈추었다. 눈을 뜨니 버스와 충돌직전에 다행히 택시가 멈추었다.


“아이구, 괜찮으십니까? 어르신”


“괜찮아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죽을 고비를 넘겨서 그런지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점심을 먹기 위해 읍내에 있는 국밥집에 들렀다.

국밥을 기다리며 할아버지께 말을 붙였다.


“할아버지 어쩌다가 이발소를 차리시게 된 거에요?”


“먹고 살려고 했지, 뭐”


할아버지는 그런 싱거운 질문은 뭐냐는 식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이내 신난 표정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너무 멋진겨, 흰 가운에 빤짝 광나는 가위가, 홀린거지, 홀린겨”


간만에 보는 할아버지의 웃는 얼굴이었다.


“근데 왜 이름이 원산 이용원이에요? 거기는 원산이 아니잖아요.”


“글쎄다”


할아버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신 다고 했다.

왜 원산 이용원으로 지었는지.

가장 기억나는 건 이발소 하나를 너무나도 차리고 싶었다고 하셨다.

미군 부대에서 이발을 하며 돈을 많이 모으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왜 그만뒀는지 물어보자 코쟁이들의 싸움이 남북전쟁보다 무서워서 그러셨다고 하셨다.


“미군 친구도 있었어. 이름이 뭐더라? 브라 뭐시기”


“브라이언이요?”


“이이, 맞아, 브라이언 아주 턱도 각지고, 대가리도 각지고 그랬지”





국밥을 먹고, 할아버지와 함께 윗집 김 영감탱이 집으로 향했다.

장례는 모두 끝난 상태였고, 그 집 아들분이 내려와 정리하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김 영감의 아들 분을 만나 잠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 분은 아버지께서 신세를 많이 지셨다고 외상값을 드리려 했는데 할아버지는 한사코 거절하셨다.

할아버지는 알고 계셨다.

김 영감탱이가 돈이 없어서 외상을 한 게 아니 란걸, 외상을 한 건 할아버지한테 잔소리라도 들으며 말을 붙이기 위했다는 걸 알고 계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김 영감님을 집을 나와 가게로 향했다.





“올라가서 사는 거 아니었슈?”


돌아보니 우용 할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우리 뒤를 따라오고 계셨다.


“잠깐 왔어, 김 영감탱이 찾아오러”


우용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께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보였다.


“온 김에 이발이랑 면도나 좀 해줘봐”


“그러지 뭐, 같이 가자고”


할아버지는 흔쾌히 수락하셨고, 나는 초조해졌다. 부재중에 아빠한테 전화가 와있었고, 문자도 몇 통이나 와있었었다.

가장 최근 문자는 나를 너무나 무섭게 했다.


‘지금 대천이지? 아빠 지금 간다.’


정확히 그 문자를 이발소 앞에서 봤다.


“가게 열쇠 좀 줘봐”


할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네? 열쇠 안 챙겨 왔어요. 김 영감님 집에만 들른다고 하셔서”


“이눔아, 온 김에 이발소도 열고 해야지”


순간 뒤에서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돌아보자 연분홍 한복을 입은 여자가 내게 열쇠를 건네고 있었다.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네?”


“이거 가게 열쇠구만, 가져 왔구만”


“손주가 장난이 심하네.”


할아버지는 잽싸게 열쇠를 낚아채고는 이발소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내 감사인사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그나저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빠가 오고 있는데 할아버지는 이런 내 마음을 모르시는지 우용 할아버지를 이발소 의자에 앉히고, 턱에 흰색 보자기를 두르셨다.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난 이제 죽었구나 하고 있는데 문득 이발소 거울로 할아버지가 머리를 자르시는 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발에 깁스를 하신 것도 잊으신 채 이발에 집중하셨다. 저렇게 좋으실까?


“사각 사각”


원산 이용원 안에는 가위질 소리만 들렸다.


“오랜 만에 문 열었네”


“어이 최씨 얼른 드루와”


그 와중에 다른 할아버지가 들어왔고, 할아버지는 반갑게 맞이했다.

우용 할아버지는 수염에 면도 크림을 바르는 중이라 입은 다무신 채, 눈으로 인사했다.

할아버지는 거친 솔로 우용 할아버지의 턱에 면도 크림을 달랐다.

그리고 면도칼을 옆에 놓인 가죽 끈에 몇 번 훑으시고는 면도날로 조심히 수염을 깎으셨다.

예전 같았으면 할아버지가 나이 먹고 고생하신다고 생각 했겠지만, 지금의 할아버지는 달라보였다.

본래 자리를 찾으신 듯 즐거워 보이셨다.

언제 입소문이 퍼졌는지 손님이 계속해서 왔다. 어느새 대기용 의자가 할아버지들로 가득 찼다.


“이 눔아, 가만히 있지 말구, 머리카락 좀 쓸어”


할아버지의 잔소리에 머리카락을 쓸었다. 물도 받았다.


“얼른 읍내 가서 면도크림 좀 사와, 가서 원산 이용원에서 왔다고 하면 알아서 주실 거여”


“네!!”


할아버지를 돕기 바빴다. 아빠가 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읍내로 향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원산 이용원에서 왔다고 하자


“할아버지 관둔 거 아니었나? 다시 이발소 하시나?”


할머니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면도 크림을 주셨다.

들뜬 기분도 잠시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가게로 가는 길목에 아버지의 차가 세워져있었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며 이발소 문을 열었다.

가보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이발중이셨고, 아버지는 다른 할아버지 머리를 감겨주고 계셨다.

왠지 그 장면이, 젊은 할아버지와 어린 아버지의 모습으로 오버랩 되며 머리를 스쳤다.

마지막 손님이 끝나고, 할아버지는 다리가 아프셨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이발소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는 구멍가게 앞 평상에 앉으셨다.

아빠는 그 옆에 앉았고, 나 역시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는 우용 할아버지가 마시라고 가져다주신 박카스를 마셨다.

우리 구멍가게에서 가져온 거 같았지만 어쨌든 감사히 받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동시에 박카스를 들이켰다.

달았다.


“아버지, 깁스 풀 때까지만 인천에 계시고,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아빠의 말에 할아버지는 얼굴에 주름을 드러내며 밝게 웃으셨다.

그리고는 나를 한 번 바라보셨다.










“PD님 권태룡씨 건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녀는 은은한 등을 흔들며 조심히 물었다.


“아, 괜찮아요. 미완성 본이라서 생명에는 지장 없으셔요. 너무 자책하지 마요. 50% 감봉은 피할 수 없지만”


“어? 대체로 그 정도 나이이신 분은 영화제작이 끝나지 않나요?”


“권태룡씨 인생에 꼭 넣어야 하는 장면이 생겨서 아직 미완성입니다.”


등(燈)이 노르스름한 불빛을 내며 팔랑 팔랑 회전목마처럼 돌아갔다.















할아버지는 이발소 의자에 앉았다.


“앉히기만 하고 서서 일해서 영 어색하고 그러네”


할아버지는 멋쩍게 웃은 후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기부 추천 반대 신고
추천되었습니다.

▲ 다음글 밖에나가지마시오 35화 삶이무의미함 48 0 2 960 2019-11-27 [21:41]
▼ 이전글 밖에나가지마시오 34화 삶이무의미함 46 0 1 883 2019-11-26 [20:10]
답글마당(6) 게시물이 재미 있으면 기부할 수 있습니다. (기부된 개념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그녀관찰일기
한달여만인가요..? 반갑습니다 이번에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1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11-27 00:55:35
웃대하고싶어
좋은글은 추천이지!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11-28 10:50:16
소르빈
공포<<<<<<감동
1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11-28 16:52:28
SOFTFIRE
좋아요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11-28 20:34:35
황금우산
부1랄이 울면서 추천이요!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11-30 23:25:58
패랭이꽃
모두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번에는 공포글을 올리겠습니다!!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12-03 22:41:00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게시물에 상관없는 댓글이나 추천유도성 댓글을 달지 마세요.
스포일러성 답글이 신고되거나 발견되면 이유불문 삭제 혹은 정학처리 됩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답글쓰기
한글 512자
로그인
[공지] ① 웃긴대학의 운영목적은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입니다. 악성답글, 상처주는 답글, 음란 답글을 작성하지 말아 주세요.
② 내가 옳다고 하더라도 조용히 신고만 하시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글을 쓰지는 마세요. 이곳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곳이 아닙니다.
③ 정치 관련 글, 남녀 갈등 조장 글, 저격 글, 분란을 야기하는 글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신고를 확인하는 대로 강하게 제재하고 있습니다.
④ 지속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회원은 옳고 그름을 막론하고 정학 혹은 차단조치됩니다.
▲ 다음글 밖에나가지마시오 35화 삶이무의미함 48 0 2 960 2019-11-27 [21:41]
▼ 이전글 밖에나가지마시오 34화 삶이무의미함 46 0 1 883 2019-11-26 [20:10]
페이스북
트위터
목록
추천
반대
URL 복사
스크랩
맨위로

← CTRL+C 로 복사하고 CTRL+V 로 붙여넣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