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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날의 시골마을 上
작성자 삶이무의미함
번호 78481 출처 창작자료 추천 11 반대 0 조회수 723
작성시간 2019-06-06 23: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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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안.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자가 기가차다는 듯 말했다.



“야. 너 몇 살이냐.”

“..스물.. 여섯입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자신의 나이를 말하는 조금은 앳되 보이는 남자. 박천호는 올해 00주식회사에 입사하게된 신입이다. 4년제 대학과 군복무를 마치고 바로 직장을 갖는 전형적인 신입 중 한명이었다.



“근데. 운전면허가 없다는게 말이 돼? 그거 학교다니면서 얼마든지 딸 수 있는거잖아.”



조기석. 그는 올해 5년차로 접어든 팀장이었다. 얘기치 않게 지방 출장을 나간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불만이었지만, 5년이라는 짬에 운전대를 잡고 신입을 데리고 가야한다는 것도 불만이었다. 그 외에도 짜증도 잘 내고 여러 가지로 불만이 많아서 회사 내에서는 ‘투덜조.’ 라고 불리고 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여유가 안되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꼭 시간이 나면은 면허를..”



천호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표했다. 그 어린양 같은 모습에 기석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박천호.”

“예.”

“너 그렇게 굽신대지 말라고 내가 그랬지.”

“....”

“사내새끼가. 좀 자신감 있게 말하란 말이야.”



기석은 그런 천호에게 더욱 못되게 굴었다. 이유인즉, 천호의 신입 때 모습이 기석의 신입 때와 판박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뼈아팠던 기억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 같아 기석은 천호의 연약한 면을 볼 때 마다 왠지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기석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착하고 여리면 사회에서 물어뜯기기 일쑤다.' 그것은 곧 상어가 들끓는 곳에 피를 흘리며 헤엄을 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공격할 때는 가차 없이, 냉정하게 물어뜯다가 필요할 땐 다시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



그것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기석의 성격상 그게 어려웠다. 적당히 강한 말로, 때론 모진 말로 대하면 알아차릴까 싶었지만 심성이 착하고 여린 천호는 그게 조금 더딘 편이었다.



“됐고. 이번에 현장 가서 당장 뭐 조사할건지 말해봐.”



기석은 악셀을 밟으며 말했다. 가슴과 엉덩이 쪽에 느껴지는 압박을 느끼며 천호는 미리 적어두었던 수첩을 꺼냈다. 하지만 기석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보지 말고. 언제까지 볼거야. 외워야지. 3개월차면 그 정도는 외울 수 있잖아.”



그 말에 천호는 보이지 않는 한숨을 쉬며 조금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주민들에게 동의서를 얻어야 합니다. 주민이 없을 시에는 이웃이나 연락처를 남기고.. 다음으로 주민의 집이나 재산을 기존 자료와 비교해서 맞는 것과 틀린 것이 있는지 검수해야합니다. 그리고..”



약간은 서툴지만 배운대로 잘 말하고 있는 천호를 보며 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수룩하지만 머리가 나쁜 놈은 아니었다. 아까 천호에게 호되게 구한 것이 조금 미안한 감이 들었는지 기석은 입 맛을 다시며 말했다.



“배 안고프냐.”



그 말에 시계를 본 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그래. 뭐 먹을래.”


그 말에 천호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무엇을 먹을지 정하기는 쉬웠지만 온통 도로와 숲이 자리잡고 있는 곳에서는 제대로 된 음식점을 구경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것을 기석도 알고 있었는지 캐묻지는 않았다.



“....”



무거운 침묵이 지나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꼬르륵 거리는 생리적인 현상에 기석과 천호는 음식점을 찾기 위해 수시로 두리번거렸지만 온통 도로와 숲 뿐인 곳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야. 내비 다시 찍어봐.”



남은 거리가 5키로였지만 이상하게도 목적지까지 제대로 안내하지 못했다. 배고픈 마당에 자꾸만 빙빙도는 것 같아서 짜증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 기석의 비위를 건들면 안되기 때문에 천호는 날렵히 내비를 만져댔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모래시계가 여러 바퀴 돌며 경로를 다시 잡지만 마찬가지로 5키로가 남았다는 문구만 뜰 뿐이었다. 기석은 이상함을 느끼며 어딘가에 도움을 청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 시팔 뭐야 이거.”



그는 주욱 뻗은 길로 가지 않고 옆으로 뻗은 샛길 같은 길로 차를 몰았다. 울퉁불퉁 거리는 아직 포장이 안된 시골길을 천천히 주행하니 얼마가지 않아 작지만 허름한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야. 저기라도 가자.”



그건 권유가 아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천호는 ‘예.’ 라고 답했다.



밭으로 둘러 쌓인 곳에서 자리를 잡아 운영을 하고 있는 식당이 내심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장사가 잘 되고 있는지도 걱정이 됐다. 하지만 둘은 거기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일단은 배가 고팠고 원주민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기석은 식당으로 바로 차를 몰았다.



우우웅-



2층으로 이루어진 식당. 앞에 마련된 주차 공간에 아무렇게나 차를 댄 기석이 스트레칭을 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 옆으로 천호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맛있어 보이냐?”



행복식당이라고 적힌 간판을 말 없이 보던 천호는 자신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기석은 별로 기대 하지 않은 얼굴로 ‘그럴 줄 알았다.’ 라고 말한 뒤 식당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오래된 초인종 소리가 둘의 귓가에 울렸다. 곧 풍겨오는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에 위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지만 기석은 최대한의 인내로 빈 테이블에 앉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도 사람이 좀 있네?”



외딴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4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천호는 그런 사람들이 뭐가 신기한지 가만히 바라보았다가 기석의 말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뭐 먹을거야.”



어느새 나타났는지 기석 옆으로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서있었다.



“아, 김치찌개요.”



아주머니는 말 없이 식당으로 들어갔고, 테이블에 남은 두 사람은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자신들만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단지 현지인들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기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팀장님.”



천호의 말에 기석은 영문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가 이상해. 그냥 적당히 들려서 먹다가면 되지. 오늘 이내로 일을 다 끝내야 시내 쪽으로 가서 잘거 아니야.”

“그, 그렇죠.”

“또 저번처럼 차에서 자고 싶어? 난 사양이다. 나 허리디스크 있잖냐.”


그 말에 천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 했기에 기석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자.”



곧 식사가 나왔다.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반찬과 찌개를 내려 놓은 아주머니는 둘에게 말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거기엔 어떤 선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손님들에게 응당 보여야할 친절함도 없었다. 기석과 천호는 약간 기분이 나빴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기석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가는 길에 있으니까 왔죠.”



그는 이런 방면에서는 베테랑이다. 기분이 더러워도 내색하지 않으며 말을 뱉는 것. 꽤나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잘 보였어?”



그 말은 자신의 식당의 위치를 걱정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기석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천호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잡아 뗄 수도 없기에 잠자코 있기로 했다.



“아뇨. 조금 차 타고 왔어요. 근데요. 이모.”

“왜.”

“우리가.. 그 뭐냐. 야, 그 주소 뭐였지?”



기석의 말에 찌개에 수저를 가져가던 천호가 수첩을 꺼내들며 말했다.



“아, 이 주소인데요.. 어디보자.”



천호의 수첩을 가로챈 아주머니가 말 없이 주소를 보고는 기석과 천호를 번갈아 보고는 물었다.



“여긴 왜?”

“아, 우리가 그 토지 쪽에서 일하거든요. 이번에 그..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사전조사차 나왔어요.”

“..거기가?”



아주머니는 미심쩍은 듯 수첩에 적신 주소를 가만히 보기만 했다. 그 덕에 멋쩍어진 둘은 어색한 손놀림으로 찌개를 뜨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 주소로 쓰고 있나 모르겠네..”



숟가락에 가득 찌개 떠서 입에 넣으려는 순간 아주머니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기석은 잠깐 멈칫하고는 찌개를 입에 털어 넣으며 물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는 아닌데. 이 주소가 바뀌기 전 주소일거야. 지금은 이런 주소로 쓰고 있지.”


어디서 가져왔는지 볼펜으로 새 주소를 적어준 아주머니는 ‘먹고 가.’ 라는 말과 함께 주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기석은 밥알을 우물거리며 새로 적힌 주소를 가만히 보았다.



“야. 이거 검색해 봐.”



수첩을 조심스레 받아든 천호는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하여 주소를 쳤지만 정확히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비슷한 주소를 몇 개 찾아냈는데 가장 가까운 거리를 기석에게 보여주었다.



“저.. 이거 밖에 안뜨는데요?”

“음.. 여기인 것 같구만..”



그렇게 말한 기석은 ‘빨리 먹고 가자.’ 라고 말하고는 말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10분 이내로 식사를 마친 기석은 커피 자판기가 없다며 투덜거렸다. 허나 계산을 하기 위해 다가오는 아주머니를 보자마자 얼굴을 금세 바꾸며 말했다.



“잘 먹었어요.”



8천원이라는 싼 가격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석은 살짝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굳게 닫혀지는 식당 문을 보며 천호가 불안한 듯 물었다.



“저, 아주머니가 잘못 받은거 아닐까요?”



그 말에 이쑤시개로 치아 여기저기를 쑤시던 기석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답하곤 엑셀을 밟았다.



“뭐 어때. 어차피 다시 올 것도 아닌데.”



우우웅- 15분에서 20분정도가 경과된 것 같았다.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 둘은 마을 입구에 주차하고는 필요한 서류들을 챙겼다.



“와 이런 깡촌이 있었네. 차 들어갈 데도 없다니.. 참나.”



마을 안까지 차를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 큰 불편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꽤나 지체됐기 때문에 둘은 빠른 걸음으로 마을로 걸어갔다.



적당한 표지판도 없었다. 그저 외길 하나였고 울창하게 자리 잡은 숲들이 전부였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을 제외하고는 관리를 아예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기석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곳을 왜 재개발을 하려는거지. 아무리봐도 좋은 땅 같지 않은데 말야.”

“..그러게요. 혹시 숨겨둔 자원이라도 있는 걸까요.”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냐. 아무튼 이런 곳을 사들이는 인간들도 이해가 안가요. 왜 굳이 이런데를 봐갖고 이런 개고생을 시키냔 말이야.”



그의 습관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는 것은 기분이 안좋다는 뜻이다. 이럴 때엔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 된다. 여러번 털리면서 익힌 천호의 처세술이었다.



“아나 진짜. 여기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사는거야? 야. 나 때는 말이야. 이것보다도 더한 곳에 가서 사람들 설득하곤 했었다. 진짜 말귀도 안통해가지고 아유.. 그 때만 생각하면..”



그렇게 기석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오분정도 걸어가니 작은 정자와 마을회관이라고 적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정자에는 서너명의 노인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처음 모습을 보인 이방인. 기석과 천호를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기석은 재빠른 동작으로 노인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희는 OOO토지에서 나왔습니다.”



기석은 사람 좋은 미소로 노인들에게 다가가며 인사했다. 그런 기석을 가만히 보던 노인 중 한명이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아니, 여기는 어떻게 왔어?”



그 말에 기석은 밝은 얼굴로 답했다.



“어르신들 보고 싶어서 없던 길도 찾아서 왔죠.”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노인들은 말 없이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잠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한 노인이 말했다.



“어여 돌아가. 자네들이 올 곳이 못 돼. 여기는.”

“아, 저희도 가고 싶죠. 빨리 가게 어르신들이 좀 도와주세요.”



그러면서 동의서들을 모아둔 철을 꺼낸 기석이 어르신들에게 내밀었다.



“여기에 그냥 이름 석자만 써주시면 됩니다. 사전에 얘기 들으셨죠? 여기가 재개발이 된다구요.”



노인들은 그 쪽으로는 관심없다는 듯 뚱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기석은 거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아, 이것만 써주시면 저희 바로 딴데로 갈게요. 1시간 이내로 다 끝내고 돌아갈게요. 불편하게 안할테니까 아들 뻘 되는 놈 돕는 셈치고 좀 도와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애교 섞인 목소리와 밝은 얼굴로 답하는 기석을 보며 노인들은 영 탐탁치 않는 얼굴로 천천히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1시간 이내로 꼭 나가야혀. 안 그라믄 큰일나니께.”



마지막 이름을 적은 노인이 그렇게 말했다. 기석은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마을회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뒤에서 보고 있던 천호는 내심 기석의 말빨에 감탄하며 노인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아무래도 저 청년은 고집이 셀 것 같으니 자네가 꼭 데리고 나가게나. 명심해. 마을에 오래 머물지 말어.”



정자를 지나치려는 천호에게 그 말이 들려왔다. 천호는 ‘알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빠르게 기석의 뒤를 따랐다.



“없어. 정자에 계신 노인들이 전부인 것 같다. 체크해.”



그 사이 빠르게 회관 안을 확인했는지 기석이 나오며 말했다. 천호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인적사항이 적힌 비슷한 곳에 체크를 하며 기석의 뒤를 따라갔다.



다시 주욱 펼쳐진 오솔길을 걷기 시작하는 둘. 천호는 불쑥불쑥 찾아오는 더러운 기분을 이겨내기 위해 말을 뱉었다.



“가구가 적은 동네 같아요.”

“..그러게 말이다.”



오분정도 걷자 허름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둘은 망설일 것 없이 집 앞으로 갔다.



“계세요?”



노인들은 청각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의식해서라도 큰 소리를 내야만 한다. 그게 이곳 깡촌에서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지만 둘에게는 한시라도 이곳을 뜨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 시간 이내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각보다 크게 자리 잡은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은 일차적인 조사기 때문에 너무 욕심을 내서 조사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기석이 제일 절실했다. 쉼 없이 차를 운전하고 걸은 탓에 온 몸이 피곤에 절어 있기 때문이었다.



“뉘슈?”



노쇠한 소리와 함께 나이든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석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는 기석을 가만히 보고는 느릿한 걸음으로 집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곧 기석과 천호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청년들이로구먼.”

“하하. 그런가요? 어르신 다름이 아니라..”



기석은 적당히 알아듣기 쉽게 조리적으로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알 듯 말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집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일단 들어와. 뭐라도 먹으면서 혀야지.”

“아, 아니에요. 저희 방금 먹고 왔어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먹고 혀. 기다려.”



막무가내로 집 안으로 들어가버린 노인을 끌어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석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곁에서 멍하니 서있는 천호를 보며 말했다.



“야. 다른 집 적당히 돌아보면서 서명 받아와. 난 여기서 좀 쉬고 있을테니까. 내가 하는거 봤으니까 동의서도 그런 식으로 받아오면 될거야.”



멍한 얼굴로 서있었던 천호에게 살짝 화가 난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이것을 빌미로 자신이 웃으며 했던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예.”



천호는 군말 없이 동의서를 받아들고는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기석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지만 이내 들려온 할아버지의 부름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



“어여 들어와.”

“아, 고맙습니다. 근데 어르신 우리 오래 못있는데..”

“여기 해가 빨리 떨어져. 그냥 자고가.”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천호는 자신을 붙잡고 늘어지는 노인을 간신히 떼어 놓고는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집마다 위치한 노인들은 전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했고 말 끝마다 ‘자고가.’라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마치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똑같은 패턴에 천호는 지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후..”



한숨을 쉬며 스마트폰을 꺼낸 천호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났음을 깨닫고는 주소록을 뒤져 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



라는 문구가 둘의 사이를 방해했다. 천호는 하는 수 없이 빠른 걸음으로 기석이 있을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왜 이리 먼거야..”



집집마다 위치한 거리가 대략적으로 300~400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노인들은 서로 간의 왕래를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실제로 4~5명의 노인들과 대화를 했을 때 옆집이나 마을에 같이 살고 있는 노인들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없었다. 거의 평생을 같이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왕래가 적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에 이웃지간들인데 어떻게 서로간의 사정을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이상하단 말이지..”



자꾸만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천호는 마음 속에서 급격히 자라나는 불안을 이기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헉헉거리며 숨이 금세 차올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굵은 땀방울들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거칠게 땀방울들을 닦으며 처음 기석이 들어간 집에 도착한 천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기석을 불렀다.



“티, 팀장님!”



그 소리에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기석이 굳은 얼굴로 천호에게 손짓했다. 영문모를 기석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린 천호는 느릿하게 걸음을 떼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일단 들어와.”



그 말에 천호는 거부감 없이 집에 들어섰다.



“....”



집은 생각보다 단촐 했고 깔끔했다. 필요한 생활용품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혼자 살기에는 적당했다.



“왜 그러세요? 팀장님.”



방바닥에 힘 없이 주저 앉은 천호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 말에 기석은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아까 입구에서 봤던 노인들 있잖아.”

“..예.”

“그 사람들 이 곳 마을 사람들이 아니래.”

“예? 하지만 리스트에는 이름들이 있었는데요?”



천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격한 숨을 몰아쉬며 설명을 바라는 천호를 보며 기석이 말하려는 순간 그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대신 나섰다.



“우리 마을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어.”

“..전설요?”

“그래. 누구든지 입구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전설이지.”



천호는 신뢰하지 않는 눈으로 할아버지와 기석을 번갈아 봤다.



“그 노인들은 분명 자네들에게 한 시간 이후 나가라고 했을거야. 맞는가?”

“어? 어떻게..”

“두 명은 파마를 한 할머니들이고 두 명은 긴 백박을 기르고 있는 할아범들이지. 그들은 붉은 꽃이 새겨진 흰색의 도포 같은 것을 입고 있어.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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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마당(3) 게시물이 재미 있으면 기부할 수 있습니다. (기부된 개념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오레와오즈
우와... 딱 제가 좋아하는 글.
1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6-08 00:59:49
오레와오즈
아.... 아직 하편이 없네요? ㅠㅠㅠ
1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06-08 01:00:19
삶이무의미함
네 만 기다려주세요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06-08 08: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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