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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편] 진화, 사라진 죽음
작성자 루카인
번호 78215 출처 창작자료 추천 58 반대 0 조회수 4,421
IP 123.xxx.xxx.xxx 작성시간 2019-01-13 21: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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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사라진 죽음

1.
어느날 갑자기,
죽음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다.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지금껏 죽음을 회피해 보려 애를 써온 과학자들의 노력을 비웃듯, 어떠한 전조도 없이 그러한 변화가 들이닥쳤다.

사람들은 처음엔 당황했다. 그러나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했다.
그것이 설령 어제 죽은 아버지가 되돌아오거나, 살인 사건을 다루는 법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면하는 것과 같이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라 해도, 그들은 그럴 수도 있다며 애써 ‘이해’했다.

다만 사람들은 ‘이해’함으로써 일체의 상황 자체를 부정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창조물인 법이라는, 제도라는 장치는 그렇지가 못했다.
생자와 사자를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아니, 그전에 죽은 사람 자체가 더 이상 나타나질 않았다.

조치가 필요했다. 법의 경계가 모호해짐에 따라 갖가지 이변이 일어났고, 규칙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권력을 이용한 사회 통제로 국가는 그런 경향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흐르는 계곡물을 손바닥으로는 완전히 막을 수 없는 노릇,
누구도 토를 달지 않을 사자와 생자의 정의에 대한 새로운 준거기준이 필요했다.

그에 부응하듯 혼란의 상황 속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주장을 펼쳤다.
단 한 번이라도 죽을 상처를 입었음에도 살아남은 이들을 사자로서 보자는 입장, 그런 것과 상관없이 사지가 없거나 척추가 망가지는 등 회생 불가능한 이들을 사자로서 보자는 입장, 심지어는 모든 이들을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들만을 사자로 구분하자는 입장 등 별의별 의견들이 발두되어 대립각을 세우기 바빴다

제각기 다른 것처럼 보이는 말들이었지만 사실 그들의 주장에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살아있으면서도 생자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자가 되어 그저 의무만을 행할 살아있는 ‘망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망자에 속하길 꺼렸기에 의견은 통합되지 못하고 지루한 말싸움만을 반복했다.

그렇게 혼란이 지속되는 사이, 발 빠른, 소위 말해 약삭빠른 이들은 자신들의 검은 마수를 뻗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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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위 시선에 너무나도 민감하여 조금의 압박만으로도 죽어가는 이들이 있다.
한편 그와 반대로 극도의 둔감함을 가진 이들 또한 있다.

권력은 둔감하다. 동시에 민감하다.
조금의 시선에도 쪼그라드는 것이 권력이지만 조금의 목소리에는 미동도 없는 것이 권력이다.

눈치 챈 사람은 소수였다. 말 속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많지만, 말이 가져올 영향을 정확히 예측해내는 사람은 적다.
시작은 미디어에서부터였다.
이제 모두가 죽지 않게 되었으니 위험할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도 개인의 안전만을 추구하려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임이 틀림없다. 따위의 말이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객관적인 이성을 추구해야 할 과학자들마저도, 이구동성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이 불사의 권능에 부작용이란 없다! 단순히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치명상을 입어도 금세 수복되는 것일 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영생 또한 꿈이 아닐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이 현상을 잘 파악하기만 한다면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실제로는 왜 일어나는지 아는 것도 없으면서 이를 어떻게 써먹을 것인지만 가지고 자기들끼리 왈가왈부, 떠들어댔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알게 모르게 인간의 존엄성이 추락해가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아마 불사를 바탕으로 한 범죄 때문이겠거니, 생명의 일회성이 사라졌기 때문이겠거니 하는 것이 사람들 대다수의 생각이었지만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진실은 생각보다 더 노골적이었다.

원인은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오래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어떤 장소를 가까스로 탈출한 한 제보자의 굳건함 덕분이었다.
용기가 아니라 굳건함이라, 말에 좀 어폐가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지옥도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아마 십중팔구 미쳐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그가 밝힌 바로는 어딘가에 공장이 설립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곳이 원흉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공장은 불량품을 생산해 내는 것도,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한 공장일 뿐, 허나 생산되는 에너지의 재료는... 바로 인간이었다.
지금껏 과학자들은 진화한 인간의 신체가 재수복되는 과정에서 많은 열과 전력량이 생성되고, 재생되는 신체 부위 또한 최적의 건강상태를 유지한 채 재생된다는 것 등을 밝혀왔었다.


생각해 보라. 생명의 유지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먹을 것, 입을 것, 약품, 기타 등등.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상처의 수복 또한 마찬가지다.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많은 에너지, 그리고 열을 발산한다.

헌데 인간이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죽지 않는 불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상처의 재수복을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은 불가항력일 터.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 원인 모를 에너지를 사용 가능한 실질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대체에너지 감이 있을까?

단순한 정보의 획득, 나아가 새로운 발전을 위해 과학자들은 그런 사실을 세상에 밝힌 것이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라 누가 예상했을까.

뭐, 그 이후는 당연하게도 그 사실을 어떻게 이용할까 궁리하던 일부 자본가들에 의해 비밀리에 공장이 세워지게 되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람들이 실종하게 되고, 갈수록 흉흉해지는 분위기에 서로를 의심하고, 이를 되풀이하길 몇 번째..
인간의 존엄성이 추락하고 있다는 얘기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인간을 구속한 채 상처를 입혀 꾸준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그리고 연료로 사용할 탄소를 인간의 몸에서 보충한다.
그 두 가지 이론이 그가 언급했던 에너지 생산 공장의 대대적인 설립 목적이었고, 이 외에도 원한 관계, 구금장 조성 등 부가적인 목적이 있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이후의 조사에서 그러한 공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국민 청원이랴, 대규모 시위랴, 국가는 민중들의 극렬한 몸부림을 올곧이 받아내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국가는 그들의 원성에 힘입어 간신히 주모자들을 처벌할 수 있었다. 국가의 힘이 절반 이상 쇠퇴했지만 가까스로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록 관련자들은 처벌받게 되었지만 땅바닥에 떨어진 존엄성 때문인지 피폐해진 삶 때문인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차피 죽지도 않는데 몸 따위, 함부로 굴려도 상관없잖아?’ 라는 생각이나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은 거지 뭐.’ 따위의 생각이 이미 빠르게 확산된 뒤였다.

새로운 국면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는 사회 통제력을 전보다 더 강화시켰지만, 이런 생각들까지 막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죽음이란 개념만이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이 입을 상처에 대한 관심도 점차 멀어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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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을 연료삼아 생을 영위하려는 이들과 그런 무리로부터 자신과 주변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
이는 진화의 결과물이니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들과 이런 끔찍한 변화를 더는 용납할 수 없다며 거부하는 이들.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어 맞섰고 이는 점점 눈처럼 불어나 전례 없는 규모의 전쟁으로 번졌다

진화 이후, 전쟁 따위의 하등한 유전인자들이나 벌일만할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리란 예상은 오산이요 착각에 불과했다.
하물며 자칭 진화한 인류라는 작자들이 일으킨 전쟁의 양상은 더욱 더 지옥 같았다.

죽지는 않았지만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 전장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전사자는 속출했다.
전쟁의 참상을 겪고, 마음을 돌려 은둔한 이들이 있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라면 정신적인 장애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셀 쇼크 현상.. 이 외 등등..
불사는 그저 신체에만 적용될 뿐, 강철보다도 더한 육신이 되었건만 유리만도 못한 정신은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으며 인간들은 점차 붕괴되어 갔다.

한편 죽지 않는 진화한 인간들로 인해 어지간한 병기와 진화 이전의 전략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그저 전선만 유지할 수 있었을 뿐.
특히나 압도적인 전력 차로 적들 자체를 직접 제압하면 모를까, 비등비등한 전력으로 직접적인 대치 상황에서 얻는 이익은 전무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군대는 더 강력하고, 더 끔찍한 병기를 계속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화했다지만 인간 자체는 그다지 강해지진 않았다. 때문에 전쟁이 지속됨에 따라 여러 이유로 인해 실질적인 전투 가능 인원은 양측 모두 바닥에 치닫게 되었다.
견디다 못해 서로가 자멸까지도 각오하고 최후의 무기를 꺼내들려고 할 즈음, 그 때 음지에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이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들은 더는 이 빌어먹을 전쟁을 존속시킬 수는 없다며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압도적인 전력 차임에도 불구, 군대를 무력화시키는 기적을 일으켰다.

가까스로 반란이 성공하자, 새로이 지도자가 된 이들은 다신 과거의 허물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의 통합된 사회, 통칭 ‘네오 커뮤니티’를 구성했다.
그렇게 커뮤니티가 탄생하자 잠시 세상에 평화가 깃드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 순간의 착각에 불과했다.

이미 인간의 번식능력은 퇴화한지 오래였다. 하물며 지난 전쟁의 여파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채 1할도 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자생할 수 있는 자급자족 체계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골머리를 앓던 커뮤니티의 지도자들은 곧 한 가지 방법을 강구해냈다.
“실제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적지만 어차피 죽은 ‘망자’에 해당하는 이들은 넘쳐나고 또 넘쳐난다. 이대로 자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러니 그들을 연료 및 노예로 삼아 남은 모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들자.”

반론의 여지는 없었다. 모두가 그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전의 문명이 가져다주던 편의의 유혹을 떨쳐내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자들은 반항조차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결국 이 방안은 받아들여졌다.

그토록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평온한 삶을 떠나 전쟁터로 나서면서까지 지켜왔던, 인간을 구분하는 경계에 대한 주제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지금은 백치가 된, 한 때 위대한 사상가였던 이들에게는 실로 통탄할 일이었다.

대신 그 대가로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커뮤니티 내부에 한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생활을 복구할 수 있었다.
번식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쉬웠지만, 이는 더 이상 인간으로 구별 받지 못하는 망자들 중 그나마 재활 가능성이 보이는 이들을 생활 가능 상태로 변화시키는, ‘구원’이라는 커리큘럼을 만들어 해결해 나갔다.

커뮤니티는 안정적이었다. 오래 존속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규모도 너무 크게 불어나지 않고, 지난 전쟁의 기억을 명목으로 통제도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만약 그들이 그것을 깨달았다면 커뮤니티를 이룰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그들로서는 과거의 번영이 너무도 그리웠다.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사들인 그들. 더 나아갈 데 없게 되어 사라져버린 가능성.
불필요한 번식 능력 없이 적절한 인원의 수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가?
진정으로 과거의 삶을 되찾고자 했다면,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사를 벗어나 번식 능력을 되찾았어야 했다.

과거를 그리워하면서도 재앙만 안겨다 준 불사를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들의 이중잣대.
그것은 멀지 않을 파멸로 이어질 것이 자명했다.
그러나 망집을 버리지 못한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최후의 인류이자 인류 그 자체라고 믿으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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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통합된 사회.
고통은 가장 큰 죄악이 되었다.
특히, 자신만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인간을 망자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끔찍한 고통은.

죽지 않게 되고, 더불어 안정적인 삶을 되찾게 되자 느낄 수 있는 고통은 한계란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는 것이 되었다.
커뮤니티는 그러한 사람들의 뜻을 존중했다.
고된 일과 위험은 모두 노예인 망자들에게 맡겼다.

무위도식하고 끔찍할 정도로 안온한 삶.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곧 그들은 모두 무료함에 빠져 허우적댔다.

위협이 되는 것은 오직 고통 뿐, 하지만 그것조차도 한 순간에 끝나는 것일 뿐.
무료함에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온갖 향락에 빠졌다. 신조차도 죽이는 것이 지루함인데, 감히 불사자 따위가 버틸 쏘냐.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처방일 뿐, 죽음도 가족도 품을 뜻도 없이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이들은 점차 본래 가지고 있던 성질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학이었다. 그동안 고통 받기만 하였으니 이번엔 그 반대가 되어보자는 입장이었다.
대상은 망자. 즉 노예들로, 망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은 욕망을 한껏 풀어내었다.
하지만 반항하지 못하는 상대로 대체 뭘 느낄 수가 있단 말인가.
오래지 않아 그들은 무의미함을 느끼며 그만두었다.

다음은 자학이었다. 현재의 삶에서 유일하리만치 위험적인 것을 느끼며, 발버둥치는 것.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것은 좀 오래 간 편이었다.
허나 점점 더 큰 고통과 쾌락을 찾다가 한계를 넘어 망자가 된 이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그만두었다.

그 밖의 쾌락을 얻을 수 있는 행위인 자선, 파괴, 사랑, 패닉 등등.
사람들은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것에 손을 대어보았지만 전부 다 헛수고로 끝날 뿐이었다.

시작하고, 그만두고, 시작하고, 그만두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던 와중, 어느 날 무료함을 이기지 못한 한 여자가 스스로의 의지로 망자가 되어버렸을 때.사람들은 깨달았다.
결국은 다 저런 최후다. 모두가 다 저런 최후로 귀결될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삶의 지속을 끝낼 수 없다, 라고.

곧이어 커뮤니티는 본래의 목적을 잃고 미쳐 돌아가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런 최후는 맞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도망치고, 자해하고, 정신줄을 놓고..

커뮤니티는 붕괴했다. 그런 상태로는 자급자족의 체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처음에 바랐던 완전무결한 삶 대신, 현실을 어느 정도 수용하여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깨끗한 죽음을 바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쩌랴, 그들의 몸은 그들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을.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가 없었다.
한 때 축복이라 불리던 것들은 저주가 되어 그들의 목을 옥죄었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 불사의 의미는 영원한 고통이었다.
그러한 고통을 끝내고 싶었던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고통스럽지 않게 정신만을 죽이는 방법을 고안해내기 시작했다. 죽지 않는 몸이었으니 당연한 순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방법들. 저마다 용이성, 무통성의 정도에 차이는 있었지만 그 중 단연 최고는 한 의학자가 제조해 낸 어떤 약물이었다.
마시는 순간 고통과 함께 기억을 잃는 약물이 있다면 어떠하겠는가? 편하게 죽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성수가 아니겠는가? 그 의학자가 만들어낸 것은 그러한 물건이었다.

그는 자신이 최초 복용자가 되기 직전, 제조법을 널리 퍼뜨렸다. 그리고선 곧 육체만 남은 인형이 되었다.
더 이상의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짐승의 세상.
욕심도 이기심마저도 메말라버린 무생물의 세상.
아마 그는 자신이 만든 약물의 제조법을 전도한 것을 자신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인간성이라고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렇게 탄생한 약물을 늙은 노인부터 심지어는 어린 아이까지,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정신을 죽이기 위해 복용하기 시작했다.
소수의 남은 인간들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외쳤지만, 이미 인간성을 잃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 또한 매한가지로 인간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활동하는 인간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갔다.
100억, 10억, 1억.. 혼이 떠나가 버려 망자보다도 못한 상태가 된 육체는 땅에 묻히는, 쌓아놓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처리되었다.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엄성을 가진 생명들은 더 이상 이 땅 위에는 없었다.
채 10명도 남지 않은 때, 인간의 고귀함을 외치던 이들마저도 지치고 지친 끝에 손에 약물을 쥐었을 뿐이다.

세상에 남은 사람의 흔적이라곤, 산산이 깨져 있는 약병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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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간은, 인간이 바라고, 꿈꾸던 것들에 의해 파멸적인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다.

누가 알았을까? 한 발짝 나아감이 바로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길임을.

진화했다 하였지만 나아진 점은 없었다. 단순한 몽상에 지나지 않았다.

진화한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진화한 것은
죽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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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자체는 작년 7월 즈음에 했었는데..
써놓고 보니 너무 못 쓴 것 같아서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 반년 가까이 지나버렸네여.
솔직히 지금도 망설여지기는 한데 영영 못 올릴까봐 일단 올려봄니다.
정말 쑥쑥 써내려가는 사람들 보면 신기하고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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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마당(15) 게시물이 재미 있으면 기부할 수 있습니다. (기부된 개념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닉넴이음슴
감사히 잘 읽었어요. 첫번째 추천도 함께 놓고 갑니다. 공게가 예전에 비해 글이 많이 안올라와서 슬프지만 가끔 이런 단물같은 작품들이 기쁨을 주네요.
1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1-14 05:13:35 39.xxx.xxx.xxx
루카인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함다. 제게도 첫 댓글이네여. 다른 작가님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래도 계속 써 볼 작정입니다.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01-14 12:14:05
121.xxx.xxx.xxx
주마등관람차
와... 정말 재밌게 보고 갑니당 ㅎㅎ 추천 드세욧!!!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1-14 21:54:30 211.xxx.xxx.xxx
루카인
감사함다!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01-14 23:11:44
123.xxx.xxx.xxx
작은슴가싫어
좋은글 감사합니다. 베르베르의 글을 읽고있는것 같았어요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1-16 15:11:04 14.xxx.xxx.xxx
루카인
읽어주셔서 감사함다.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01-16 17:56:40
223.xxx.xxx.xxx
SOFTFIRE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1-17 17:13:11 221.xxx.xxx.xxx
힉힛호모이
와.. 정말 재밌게 봤어요 더 열심히 해서 이런 글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추천 먹이고갑니다~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1-18 13:45:30 223.xxx.xxx.xxx
하마크리퍼
근데 진짜 학문에 열의 있는 사람들은 영생하면 좋아할 거 같은데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1-19 21:19:11 49.xxx.xxx.xxx
황금우산
우리가 흔히 반대개념이라 생각하는 인간과 로봇, 물론 이 글에선 망자가 로봇과 비슷하겠지요. 자유의지 없이 정해진 틀에서 행동하는 로봇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오늘날의 우리와, 무료한 영생을 포기하고 망자를 스스로 선택하는 이 글에서의 우리를 비교하며 읽어보았습니다. 죽음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세상에서 전사자가 발생했다라는 맥락은 조금 낯설어서 신체의 회복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해버린 진화인간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영생에 가까운 인간이 고통을 기피하고 두려워 망자에게 그 부담을 떠넘긴 와중에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여 고통을 부담하는 망자가 된다는 점이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쾌락을 무한히 좇을지언정, 차라리 완벽한 자살을 하지 못할 망정 평생 본인 스스로 로봇이 되겠다는 최후의 인류는 혹시 님의 인간vs로봇을 비교하기 위한 작성의도인지 궁금합니다.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2-01 03:26:19 211.xxx.xxx.xxx
루카인
로봇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망자는 일종의 목적을 이루는 도중에 생긴 폐기물 같은 겁니다. 통상의 사람들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불멸불사의 꿈이, 아무런 노력도 대가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진다고 하면, 과연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할 수가 있을까요? 아니겠죠. 처음 몇십년 정도야 잘 지내겠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요. 조용한 방에 한 달만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쳐버립니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무료함이나 허무한 감정을 떨쳐버리려 해도.. 한계는 있으니까요. 그걸 이겨낸다면 진정한 불사자가 된다는 것이겠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니, 존재하긴 할까요. 저는 없을 것이란 가정 하에 글을 쓴 겁니다. 망자는 그저 그런 시도에 실패한 폐기물일 뿐인 것이죠.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02-01 12:43:03
223.xxx.xxx.xxx
루카인
그리고 망자가 되겠다는 건 고통을 부담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을 떨쳐버리기 위함이죠. 겉으로 보기엔 망자만 모든 고통과 의무를 부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살아있는 사람들 기준이죠. 정신이 파괴되었다는 건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단 겁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도 모릅니다. 괴롭지 않지만 기쁘지도 않을 뿐이죠. 고통받는 것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정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서서히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잃어가는 살아있는 '생자' 뿐입니다.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02-01 12:43:56
223.xxx.xxx.xxx
(삭제) 삭제된 답글입니다.

루카인
글을 썼던 의도는 만약 세상에서 죽는 사람들이 없어지게 된다면..이란 생각을 시뮬레이션화 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불사하게 된다면 일부가 죽든 전체가 죽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뤄야만 한다는 생각을 포함해서요. 거기에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맞물려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은 없다는 끔찍한 최후가 나타났을 뿐이죠. 그렇게 바라던 것을 놓아버리든, 아니면 현실에 안주라지 않고 새로운 길을 열든, 무슨 방법이든 분명 되돌릴 길이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02-01 12:44:48
223.xxx.xxx.xxx
뒤룩뒤룩
이거 완전 영화 시나리온데.. 영화 한편 다 본 느낌이에오. 진짜 만들어지면 재밌을거 같음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2-16 11:37:08 118.x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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