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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놋쇠에 불을 놓다.
작성자 양촌
번호 78418 출처 창작자료 추천 44 반대 0 조회수 3,749
작성시간 2019-05-10 00: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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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경 시칠리아에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화형기구. 보편적으로 고대 이탈리아, 그리스세계에서 사용된 화형 기구는 아니다. 놋쇠 황소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린다. 영어권에서도 "Bronze bull of Phalaris(팔라리스의 놋쇠 소)", "Brazen bull(놋쇠 황소)" 혹은 "Phalaris cow(팔라리스 소)"라고 부른다.

놋쇠로 만든 황소에 사람을 가두고 아래에 불을 질러 천천히 사람을 익혀죽이는 장치로, 처형을 시작하면 안에 들어간 사람이 산 채로 구워지면서 내는 비명소리가 정밀히 설계된 소 입부분과 연결된 금관을 울려 마치 황소가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하며, 역사상 가장 잔혹한 사형 방식 중 하나로 손꼽힌다.

상술한대로 그 잔혹성과 사료 교차검증을 통한 실존 확인의 어려움 때문에 실존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으며, 고대 유럽사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허구의 물건, 즉 괴담이었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이 물건과는 의도가 전혀 다르지만 만파식적의 전설을 생각하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제작자는 기원전 6세기의 폴리스 아테네의 발명가인 페릴루스이다. 당대 시칠리아섬 아크라가스의 폭군, 팔라리스(그리스 문자: Φάλαρις)가 페릴루스에게 지시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비극적이게도 가장 먼저 이 놋쇠 황소에 들어가 화형을 당한 사람은 이것의 발명가였던 페릴루스 본인이라고 한다. 죽기 직전에 꺼내져서 절벽에 내던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훗날 이 황소를 만들도록 지시한 팔라리스 본인도 폴리스 사람들에 의해 황소 안에서 익어 죽었다고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할까.

밖으로 나가면 일반인처럼 웃고 떠드는데 집 현관 문턱만 넘어서면 입을 싹 닫고 거실에 널부러져 리모콘만 돌렸다.

스물일곱살 먹을동안 뭐 했겠냐 싶겠지만 그냥 남들처럼 사는대로 생각했고 사는대로 살아갔다.

뭐 꿈도 없었고 하고 싶은것도 없다.

돌이켜보면 이때동안 내 속내를 터 놓은적이 있었을까 싶다. 친한 친구 뭐 형 동생 이런거 없다.

나고 곡절이 많았던 관계로 지극히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교류는 물론 그 나이때에 맞는 유희도 없었다.

끼리끼리 논다고들 하지.

편부모 밑에서 자라왔으니 의심,두려움,불안과 같은 공통된 감정을 갖는 사람들만 어울리길 원했고

결국 남은 것이라곤 지독스런 외로움이 전부였다.

아버지도 뭐 다를건 없었다. 등처먹고 떼어 먹히는 부류들의 특징은 뻔하다.

귀 얇고 정 많고 의심없는 사람들.

90년대 초.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집안 곳곳이 붉은 딱지들로 물든 이유는 아마 그런 성격을 타고난 아버지의 운명이 아니였을까 싶다.

대체 나를 낳아준 분께서 왜 집을 나갔고 언제부터 집을 나갔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집안 구석구석 깨끗하게 지워지지 못한 작은 종이들로 귀결했고

그런 과거를 매일 마주할때면 궁금증은 쉽게도 해결됐다. 그래서 굳이 물어볼 필요도,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참 불쌍한 인생을 보냈겠구나 싶겠지만 그래도 살만은 했다.

반쪽짜리 부모지만 그래도 내겐 부모라는 언덕이 있었다.

한창 사춘기 무렵에 그 이전 기억들을 되돌려보다 문득 너무 유치하지 않았었나? 라고 생각되던 부분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발맞춰 성장해 왔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비벼줄 언덕은 내 나이에 맞게 고갤 숙여줄 줄 아는 사람이였다.

비빌것.

좌우간 나한테도 남들처럼 비빌 언덕은 있었다.



근데 그런 친구같던 언덕이 무너졌다.



야간에 상하차 알바를 하는데 웅웅 전화가 끊이질 않아서 받아놓곤 숨이 턱 막혀버렸다.

그리고 겁이 났다. 분명 당장 뛰쳐나가야 되는데도 땅에 발이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급하게 일하던 형에게 문자를 남기고 그질로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꼭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응급실 내부를 보며 왠지모를 안도감이 들 무렵.

자동문이 열린 그 속에서 터져나오는 사람들의 괴성소리에 현실로 되돌아왔다.

다리가 잘린 사람, 화상을 입은 사람, 갓난 아이를 안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까지.

그 혼잡한 공간 속 가장 구석진 곳에서 익숙한 발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호흡기를 입에 씌운채 언덕은 속절없이 조용했다. 그저 뚜뚜거리는 기계음만 간간히 들려왔다.

그리고 곧 휴대폰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조경모씨 아드님 되시죠? 저는 xxx 경찰서 교통과 박xx형사입니다.

뺑소니범이 자수했습니다. 지금 힘드시겠지만 잠깐 서에서 뵐 수 있을까요?"



숨이 막혔다.



"..에 갈게요."






















서에 들어서니 아까 전화를 걸었던 형사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뒷쪽에 앉아 있는 집단이 눈에 들어왔다.

거구가 앉으면 단박에 내려앉을 것 같은 잔상처 가득한 의자 위로 갈색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옆으로는 꼭 같은 양복점에서 맞춰 놓은듯한 서너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대충 돌아가는 상황만 봐도 알듯했다.

놈의 몸이 돌아가고 얼굴이 눈에 담겨진다.

눈매가 더럽다. 그 더러운 눈매만큼이나 눈썹도 짙고 얼굴도 날카로웠다.

온갖 부정적인 단어를 다 갖다 붙혀도 될 것 같은 얼굴과 표정이였다.

그리고 별 일 아니란듯 가볍게 웃으며 형사들을 향해 말을 건내는 검정양복 무리들을 보며 몸이 뜨거워졌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다 인정 한다니까요?

죗값 받습니다. 자수하러 온 마당에 무슨. 그리고...

그쪽이 사고당하신분... 맞죠?"



분명 내가 갑이고 내려다보고 있는데 왜 반대일까?



"에. 근데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뭐가요."


"부친말이에요. 일단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수준의 병원은 구해 놨어요.

치료비는 당연히 이쪽에서 지불할거구요. 혹시. 아니, 만에 하나 아버님께서.. 잘못돼시면 그것도 역시 준비해 놨어요."


"그걸 왜요?"


"아니 그러니까.."


"거기 씨x새꺄 니가 한번 말해봐. 우리 아버지 왜 저렇게 됐어?"


"...."


눈을 내려 고개를 까딱.

그 떨군 눈과 입구멍 속으로 과연 얼마나 더러운 표정과 말들이 감춰져 있을까가 궁금했다.

하지만 눈을 내린 뒤로부터 아무런 말도 없었고 변명조차도 없었다. 다분히 울분을 삭힐 상대가 필요한데 아무도 싸워주질 않는다.

누군가 큰소리를 내주면 날뛰어도 이상할것이 없을텐데 주변이 고요하니 날뛰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잠깐의 적막감을 놓치지 않고 대변인 무리가 합의를 요구했다.


"...."


입을 아-하고 벌린채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변호인들은 대답만을 기다렸다.

그 생글생글한 얼굴을 보며 말도 침도 뱉어지질 않는다. 감정의 곡절이 없었다라고 할까.

그 순간 병원에 있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 속에서 힘겹게 살아보겠다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던 언덕을 떠올랐다.

철없이 굴 때가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그리고 공판이 열렸다.

돈지랄 감투를 몸에 덧대고 초범에 심신미약. 뭐 그딴 잡것들이 더 둘둘 대어진 끝에,

삼백만원이라는 형벌을 토해내는 기염을 선보인다.

돈이면 참 사람 병신만들기도 쉬운 세상이다. 난 돈이 없었다. 그리고 빽도 없다.

그저 묵묵히 일상적인 업무를 마친듯한 표정의 법무관들을 하나씩 올려다 보는게 전부였다.

침이 꼴깍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처음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을때와 같은 돋움이 내 발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팔이 꺾이고 우당탕.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바득바득 고개를 세우는 내 눈동자 속에는 사선으로 기울어진 갈색 구둣발이 눈에 담겼다.

또각. 하고 유유히 걸어 나간다.































나는 반쯤 패어진 언덕에 찬찬히 흙을 덧댔다. 그리고 그 위에 푸른 잔디를 심었다.

그 간절한 토닥임 속에 나는 따듯한 언덕을 상상해 본다. 웃음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그거면 됐다.

하지만 힘없는 인생은 흘러가는 개울 위에 띄워진 종이배와 같다라는 사실을 망각해 버리고 만다.

없는 인생은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너울치는 개울을 빠르게 표류할뿐이다. 목적도 없고 쉬어갈 틈도 없다.

그리고 악수가 겹치면 배는 가라앉고 만다. 새로 접어 띄울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렇게 고작 두어달이라는 시간을 끝으로 내 언덕은 바스라졌다. 마지막 순간이 기억난다.

가슴이 터져라 숨을 쉬는 그 헐떡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열차게 뛰는 가슴에 눈이 처박힐때마다 나는 내 손으로 눈을 적출해버리고 싶을정도로

내 눈이 저주스러웠다.

그리고 들숨이 일정하고 고요함을 찾아갈 무렵. 아버지의 귀에 대고 소근댔다.



"고마웠어요.. 그리고 미안했어요... 푹 쉬세요..."



지극히 상투적인 대사를 읊는다. 그 이후의 전언은 없다. 입 밖으로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는다. 참는다.

차마 마지막 순간에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아직은 온기 남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내 머리통은 마치 고장난 레고인형처럼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모습을 온전히 내 머릿속에 세겨 넣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냉동고 속 뉘어진 아버지를 꺼내고 그 위에 덮힌 천을 걷어내니 바싹 마른 몰골로 실실 웃던 얼굴.

그 주름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정말이지 빼곡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마주했을때 그제서야 혼자 남겨졌다라는 사실이 가슴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그질로 정신이 나간듯 했다. 잘려나간듯 그때의 기억은 온진치 않다.






















정신이 돌아온 것은 상이 치뤄지던 도중으로 기억한다.

돈지랄이라며 자기 돈쓰는 것에 야박하던 사람을 구박하곤, 여름이면 늘 풍광 좋은 팬션에 꼬박꼬박 아버지를 챙겨 데려가 놀던 아버지의 친구.

그 슬픈 눈동자와 마주했을때로 기억한다. 아저씨는 눈을 찡그렸고 나 역시도 찡그러진 눈동자 밑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새벽.

그저 향냄새만이 가득한 그곳에 통장 하나.

선명히 적힌 아홉자리 숫자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또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찢어졌다.
























장례식이 끝나고 아버지의 시신을 태웠다.

불이 사그라들고 양옆으로 짐승이 울어대는 그 아비지옥 속에서 나는 몇번의 빗질로 쓸려나간 뼈대.

그것이 작은 상자에 담겨 내 품에 들어왔을때만 해도 왠지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가 계실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캄캄한 거실 한 켠에 조각조각 떨어져 나간 인조가죽 쇼파에 내 비빌언덕이 앉아있던 기억을 떠올리고 따라했다.

티비앞에 앉아 채널을 돌리고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를 태우기도 이른 아침 일어나 밥상을 차리기도,

생전 마트라곤 가본적없는 내가 시장 반찬을 둘러보고 맛을 보고 서투른 칼질에 찌개를 끓여 공손하게 식탁 위에 올려 놓기도 했다.

이런 기분이였을까. 이런 수고스러움이였을까. 차려진 반찬이며 찌개가 다 좋았다. 전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였다.













그날 이후로 일어나는 시간, 잠드는 시간은 내게 의미로 와닿지 못했다. 그 전보다도 더했다. 난 죽어 있었다.

식탁 위에 차려 놓은 것들은 곰팡이에 말라 비틀어졌고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하루를 보내면 뱃속이 그륵했다.

그럼 말라 비틀어진 빵쪼가리를 아가리에 쳐 넣으며 옛 기억을 곱씹었다.

남들처럼 계절이면 어딜 놀러갔다. 어설펐어도 좋은 기억들이다.

편부라 엄마 없다고 기죽을까봐 운동회면 꼬박꼬박 보러왔고

군대 있을때도 찾아와 없는 처지에 이것저것 참 많이도 사왔다.

너도 담배를 태울줄 아냐며 담배를 물려주곤 깔깔 웃던 얼굴.

목소리 눈동자. 그 자잘한 주름 속 초라한 행색이 되어버린 그것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씹어대던 빵조각이 넘어가지도 도로 나오지도 않고 끅끅 댔다.

시작점이 달랐다는 이유만으로 받은 사랑을 외면하고 무심했던. 그런 못돼 처먹은 생각들과 행동들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심장 앞에 되돌릴 수 없는 그리운 추억들을 내 앞에 토해놓았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손 떼 가득한 손가락 투박한 손 향기 그 주름진 이마와 눈동자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나는 죽었다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아니였던듯 했다. 굶주림에 끼니를 찾았고 살아는 있었으니 산 사람은 살게 되더라.

나는 병원을 찾았다. 내 몸이 아닌 아버지와의 그리움에 대한 매듭을 짓고 싶었다.

텅텅빈 머리통으로 찾아간 그곳에서 나는 그 사람들을 찾지 못했다. 병원을 착각한것이 아니였다.

담당의와 간호사들 그리고 담당의 옆에 서브하던 인턴까지. 그들은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프론트에 있던 서른살쯤 돼 보이는 간호사가 넋나간 내 얼굴 앞으로 걸어왔다. 날 기억하는듯 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그때 너무 많이 우셔서.. 저 혹시 기억나세요? "


"네.. 안녕하세요.."


"몸 많이 성하셨네요. 괜찮으세요?"


"괜찮아 질거에요."


"근데 여긴 무슨일로..?"


"아버지. 돌봐주시던 분들 인사드리러 찾아왔어요."


"아..."


"그분들 좀 만나뵐 수 있을까요?"


"그분들 지금... 여기 없어요. 아마 4월 초로 알고 있는데.. 보호자분 마지막으로 계시던 그 주말이였던가?

그때 그 담당교수님은 이직하셨고 그 밑에 있던 인턴은 집으로 내려갔다는 말이 있었어요. 무슨 사정이 있다고 그랬는데.. 아무튼

그쪽 병실 담당하던 간호사들도 싹 다 관뒀구요. 지금 여기에 계신분들은 없다고 보시면 될거에요.. 어쩌죠?"








묘했다. 그냥 알 수 없는 망상이 피어 올랐다.

큰 수술을 잘 치루고 두어달간 지극히 정상인 사람이 하루아침에 심장마비에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다. 왜?



나는 이 불길한 망상을 게워낼 해명이 필요했다. 나는 곧바로 이직한 담당교수를 찾아갔다. 하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의사니까 바쁜게 당연한 거겠지. 새벽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잠깐 짧은 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수 대신 경호원들과 경찰이 날 막아세우고 날 병원 밖으로 밀어냈다. 밥도 먹지 못해서 힘이 없었다.

말도 나오지 않았고 나는 너무 무기력했다. 나는 분명 해명이 필요했다.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아갔지만 또 쫓겨났다.

나는 급하게 이상한 말을 내뱉던 간호사를 찾아가 인턴의 고향집 주소를 얻어냈다. 그리고 또 반나절.

그곳에서 인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답답함에 가슴이 옥죄였다. 누구라도 나한테 아무일도 없으니까 그냥 헛수고 하지말라고 했으면 싶었다. 제발 그렇게 말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급하게 어디로 떠난듯 채 식지도 않은 먼지들이 가득한 단층 주택집 앞에서 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못했다.

심장만 미친듯이 뛰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계속 그렇게 말했던것 같다.






후로 나름 유명하다는 심부름센터부터 깡패새끼가 우글대는 곳까지 찾아가 돈만 맞으면 뭐든 해결해주는 사람들을 찾아댔다.

받을 생각도 없이 돈을 뿌려댄 이후로 보름정도 지나고나서 그들의 정보를 얻어 볼 수 있게 됐다. 꽤나 비싼 값을 치뤘다.






담당의는 이직을 했다. 그리고 이사를 했다. 아주 값비싼 오피스텔로.

간호사들의 사진도 받아 볼 수 있었다.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았다.

좋은 직장으로 옮겨진 것은 물론 쥐뿔도 없는 부모 밑에서 밑천이 필요한 사업도 척척 해 나갔다.

"열심히 살자", "everything's be alright" 따위의 글귀들이 적힌 SNS를 보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였다.

내게 온 아홉자리의 숫자가 담긴 통장과 다른 여럿의 통장들 속에는 과연 얼마의 돈이 담겨져 있을까 궁금했다.

속만 끓이는 사진들을 치워버리고 밑에 깔린 파일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것은 인턴에 관한 것이였다.






기록이 난잡했다. 헛소리를 자주 해댔고 자해와 폭력적인 행동을 해댔다.

그리고 경찰서에 찾아가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난동을 세번이나 부린 이력도 있었다.

가족들의 사진. 그 평범한 가족들의 모습이 얼마나 처참하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몇 장의 사진들을 끝으로

내 눈은 정신병원이라는 단어에 멈춰섰다. 그게 끝이였다.

나는 그것에 적혀있는대로 원주에 위치한 정신병원으로 곧장 내달렸다.






영화에서 보면 참 쉬운데 이건 입구부터 어려웠다.

연고도 없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인적사항을 적어 내려가는 동안 내 이마의 땀들은 방울져 아래로 뚝뚝 떨어졌고,

이내 탕진한 내 변명의 끝선에서 나는 경비원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주머니 속 돈다발을 아무런 말도 없이 그 남자에게 건낸다.

남자는 의문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이런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다행이였다.

남자는 내게 신분증을 붙혀주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차단바가 올라가고 그 안으로 차를 몰았다. 드디어 오늘 나는 인턴을 만나게 된다.




병원 내부로 들어서자 층간이 좁고 촘촘하게 방들이 늘어선 병실들이 눈에 들어왔다.

멀찌감치 보던 병원의 외소한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냄새만으로도 느껴지는 사람들의 수만 어림잡아 한층당 수십여명정도로 느껴졌다.

실제로 감옥에 가본적은 없었지만 감옥보다도 더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 나쁜 압박감에 가슴이 쪼그라 든다.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걷고 있는 관계자를 보며 혹시 내가 내민 돈을 빌미로 날 붙잡아두고 돈을 강탈하지 않을까란 불안감도 들었다.

하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그는 너무나도 정상인처럼 내게 말을 건냈다.



"그 사람 공부 잘했던 걸로 아는데? 가족들도 여기 처박아 넣고 몇 개월째 코빼기도 안비치는데 친구에요?"

"친구는 아니고. 그냥 물어볼게 있어서요."

"여기 사람들 다 뜯어보면 이상한 사람들 없어요. 오히려 더 똑똑하면 똑똑했지 진짜 환자는 몇 안돼요."



의아했다. 이런 곳에서 정상인을 만난다는게 신기한 일일까? 아니면 지금 나는 정상인인척 하고 있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남자가 실실 웃는다. 웃는 얼굴을 보고나니 더 이상의 물음은 없었다. 정상이 아니였다. 그랬다면 내가 내민 돈은 애초부터 받지 않았을 것이다.






병원 내부로 들어서자 전체적으로 어두웠지만 1층은 2층에 비하면 밝은 축에 속했다.

복도를 제외한 모든 병실의 칸막이 문 속으로 빛은 세어나오질 않았다. 깜깜했다.

눈높이에 감시용으로 만들어 놓은듯한 문 속으로 아무런 빛도 말소리 없이 침묵이다. 두려웠다. 정신병자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 것일까.

문득 관계자가 발을 멈추고 209호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게 눈짓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커텐이 뺴곡히 빛을 가린 병동 속 우뚝 서 있는 그림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직거리는 TV는 소리의 기능을 잃은듯 아무런 소리도 내뱉지 못했다. 그저 띄워진 화면 속 사람들이 재잘거리는 표정이 전부였다.

그 브라운관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에 실루엣이 비춰진다. 앉아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지극히도 나와 닮아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정신을 차리기 이전인 시절의 나와 말이다.

희고 엣된 얼굴은 사라지고 거뭇한 얼굴에 지저분한 수염. 그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는 거죽에 뼈대만 앙상했다.

힘없이 고개가 소리난 방향으로 돌아가고 손가락 반마디가 들어갈만큼 푹 들어간 눈알이 내 발끝에. 그리고 가슴에 닿고 얼굴에 한참.

쩔그렁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바닿에 찧고 누군가는 내게 손을 모았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으으으!!"



갑자기 그런 괴성이 들려왔으니 밖에서 들이닥치는건 당연했을 것이다.

나는 다급하게 문을 잠궜다.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인턴의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어떤새끼야! 말 해!"



돌아갔던 얼굴이 돌아오며, 까만 눈동자가 선명하게 내 눈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인턴의 입에선 정재되지 않은 방언들이 튀었다.



"그.. 사고 낸 놈.. 그 놈이.. 그랬어.. 맞아!

분명히 들었어.. 교수님이랑.. 둘이 말하고 있었어..

수고해달라고.. 죽여달라고.. 그랬어..

무서웠어.. 협박했어.. 그래서 신고하지 못했거든요..?

내가 잘못했어.. 그때는 흐흑.. 내가 뭘 해야 되는지 몰랐어..

그래서 신고했어! 근데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질 않았어!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어!

사람들이 찾아왔어! 날 때리고! 여기가 어디죠?

아 아,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아니야! 내가 죽이지 않았어!

아니야! 내가 죽였어!

아저씨 경찰에 신고해줘요!

제가 사람을 죽였거든요?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문이 박살나듯 열리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 욕소리가 들려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법정에서와 같이 인턴과 내 사이를 뜯어 말리듯 다닥 붙어대던 손바닥들.

이대로 잡혀서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차라리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한번도 태어나서 아버지를 원망했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이 되서야 처음으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평생을 이기적인 모습이 아닌 이타적인 삶을 살다가 그렇게 뜯어 먹히고 쥐어 터지고 마누라한테 버려지고

그런 일들을 내 앞에서 내색한번 없이 살다가 그렇게 죽어버렸는데도 영정사진 속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이 미웠다.



세상 이유없는 행동은 없다라며 그런 이유로 이해하고 감싸주길 바란다며 돈 꾸고 안갚는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쓸대없이 욕하는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그냥 용서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라고.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살았던 대로 나 또한 그렇게 따듯한 마음을 갖고 살길 바란다고.

그런 주절주절 말을 내뱉던 입술이 그 목소리가.

"타인을 돕자"

라고

쓰여진

액자



문구가!!!!!!!!!!!!!!!!!!!!!!




...웃겼다.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난 물었다.



"아빠. 그럼 나 그냥 병신처럼 가만히 있어야 돼? 아니면 싹 다 잡아서 죽여야 돼?"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당연했다.

묵언은 동의고 동의는 내 양심 죄책감 뭐 그딴 것들을 내 속으로부터 날려줬다.

그날 병실에서 내 언덕 위 모래알이 날아갔던 것과 같이 잡을수 없이 날아갔다.




























"생긴건 바퀴벌레 약처럼 생겼어도 이래뵈도 성능은 최고에요. 시중에서 이런거 구하기 어려울껄요?

거리는 최대 3키로. 고주파 저주파 가리지 않고 노이즈, 상쇄장치 왠만하면 다 면역이니까. 아마 원하는건 다 들을 수 있을 거에요.

한 두대면 충분한데 왜 여덜개나 사시는지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대당 백오십이니까, 천 이백.

선입금 이백 빼고 나머지 천만원중에 오십은 떼고 구백오십만 받을게요. 아, 그리고 걸리면 난 모르는 겁니다.

그냥 독박 쓰셔야되요. 알죠?"





































새벽공기가 맑았다. 서서히 지면을 달구는 빛이 도시의 건물들을 타고 밑으로 그리고 내 눈에 닿았다.

눈앞에 놓인 경찰서로 걸어 들어가며 한손엔 지독히도 평범한 과일바구니를 흔들어댔다.

계단을 오르고 "정의로운" 이라고 쓰여진 팻말을 따라 좌측 복도. 그리고 가장 끝 방으로. 또 다시 꾸벅.

멍청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낸다.

사람들이 분주하다. 댓바람부터 정신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얼굴을 본 형사는 꽤나 한가롭게 커피를 훌쩍였다.



"어, 안녕하세요. 또 보내요?"



"아우 형사님 잘 지내셨어요? 저 아시죠? 그때 그 뺑소니 당한 아들이에요.

그때 참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늦었지만 이렇게 감사 드리는게 맞는거 같아서 하하.."



응접실로 향하며 바구니를 밑에 내려놓고 책상 위에 작은 봉투를 올려 놓았다.

거부도 없다. 슬쩍 들어올려 안을 열어보고 품에 넣는다.



"아,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와 여기 방이 엄청 넓네요?"



쓸대없는 주절거림으로 응접실, 화장실, 집무실. 소리가 있을만한 곳곳에 바퀴약만한 도청기를 붙혀 넣었다.

오늘이 안되면 그 다음날. 그 다음날도 안되면 그 다음날도 찾아갔다.

점심에 야식에 왠만한 배달음식들은 전부 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차근차근 녹음해 놓은 것들을 밤새 틀어놓고 귀에 담았다.





























"에이, 뭐 언제는 또 보지 말자면서, 이렇게 허구한날 보는 사인데, 이제와서 뭔 소리야."


"이제 정말 끝이야. 처음에야 저거 보는게 웃겼지. 근데 지금은 겁나."


"검사양반이 무슨 겁이야, 보약이라도 한 재 지어줘? 생긴건 사람 여럿잡게 생겨먹은 사람이 왜이래."


"그러니까 비빌게 따로 있지. 무슨 그런 재벌가 아들놈한테 비볐냐고."


"깔깔깔! 맞어! 그 죽은 노친네는 그래서 죽은거야! 그나저나 그 아들내미는 뭐한대?"


"그거는... 버젓이 사람 죽여놓고 참 잘 지내. 저번에 그짝 회장이 불러서 갔는데,

그 새끼는 또 밖에서 여자끼고 아주 신났더라고. 그것도 지 애비가 부른 자린에서 말야.

근데 그걸 냅두는 애비도 참 대단해. 부전자전이야 뭐야. 이런게 재벌 교육이야?

여튼 이번달 말에 그새끼 밖으로 나가. 또 사고 쳤거든. 아마 몇 년은 눌러 살거야.

내가 그거 또 닦는다고 개고생했는데 아마 그 회장도 있는털 없는털 다 빠졌을거야.

애비나 자식이나... 무튼 정상은 아냐."


"풉. 그러는 당신이나 나나 정상이고? 우린 그 사람들 욕하면 안돼. 그리고 통크게 챙겨준 회장님한텐 그러면 안돼."


"나 있잖아. 진짜 핀트없이 인생 롱런하는게 목표거든? 그냥 대충 밥벌이 하면서 살고싶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형사님도 손절해. 좀 후달리면 어때? 이딴 걸레질 하는것 보다야 낫지. "


"저 병신이 실실 웃을때마다 아주 소름이 끼쳐. 그 늙은놈 떠올라서.

그러니까 왜 그런 놈을 건들여서 이꼴이야 이게. 나이를 처먹었으면 눈치라도 있었어야지.

왜 그 나이 쳐 먹고도 세상을 모르느냐고. 난 진짜 그 또라이새끼 한 짓 다 치운다고 CCTV란 CCTV는 싹 다.."


"저기요. 입 좀 조심하세요. 여기 다 들린다고."


"뭐야? 아까 무섭다고 했던 사람 맞아? 여기 어차피 식구들 천지잖어. 근데 뭐가 그렇게 겁나?"


"형사님. 나 있잖아. 이렇게 대책없이 질질 흘리는거 딱 싫어해. 그래서 아까 말했잖아. 우리 더 이상 보지 말자고.

피차 오래 볼 필요도 없어요. 알아? 우리 아무짓도 안했어. 그 늙은 꼰대야 교수새끼가 죽인거고, 우리는 그딴게 있던 없던간에

그냥 법대로 행동한거 뿐이야. 그게 끝이야. 그게 팩트야. 그러니까 일일이 그딴 일 머리 속에 박아둘 필요도 없고 질질 흘려댈 필요도 없다고요."


"야박하네. 쩝. 좋아. 우리 보지 맙시다.

근데요. 난 이 짓 오래해서 냄새 참 잘 맡거든?

우리 또 볼거에요. 아니 볼거야. 백프로.

그러니까 괜히 그때 만나서 얼굴 붉히지 말고 좋게 좋게 끝냅시다 우리.

예. 방금은 제가 실수했죠? 사과할게요. 다시는 질질 흘리는일 없도록 조심할게요. 됐죠?

우리 정의롭고 선량하신 김.성.태.검사님?"


"됐고... 그만 갈랍니다. 잘 지내시구요. 나는 이제 당신 모르는거야."


"서운하네.. 뭐 어쨌든 저 새끼는 내가 알아서 닦을게요. 뭐 아무거나 엮어서 빵에 쳐 넣던 고소를 하던 할테니까.

다음번에 볼 때는 우리 제발 넉넉히 웃으면서 봅시다. 좀."


"...글쎄? 나는 이게 끝인거 같은데."
























늦은 밤. 익숙한 목소리와 또 다른 목소리의 대화를 듣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니길 바랬지만. 아니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어놓고 보니 망치로 머리를 맞은것 같았다.

다른 앤딩을 바랬던가? 아니면 내 망상이 망상이길 바랬던 것일까? 속이 미슥했다. 토 할것만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사단을 만든 장본인은 곧 이 땅을 뜨게 된다. 자세한건 나중에 들어도 괜찮다.

박진철 교수, 박충선 형사, 김성태 변호사, 양철우 회장 그리고 양선우.

이 다섯사람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린다.






































대략적인 구상을 끝으로 나는 내 목적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연습할 시간도 없다. 그러니 최대한 돈을 다 끌어다 써댔다.

냉동탑차. 바닥이 뻥 뚫린 주거용 콘테이너 박스를 구했다.

그리고 며칠 전 장비를 구매했던 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말씀하셨던 장비야 금방 구할 수 있는데, 글쎄.. 호신용품? 그걸 왜? 그런건 시중에 잘 나와있어서 이런 곳에서 따로 의뢰할 필요는 없는데?"


"그냥 충격기 말고요. 좀 쎈걸로요."


"...원래 이런말 안하는데, 사람 죽일거면 그냥 센터쪽이나 사채.. 아니 그냥 식칼하나 구해서 찔러서 죽이세요.

내가 일하는 이부류. 이 쓰레기같은 바닥에도 꽤나 성실한 사람들 많아. 근데 당신이 사람 죽이면 어떻게 되겠어?"


"죽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불어댈 이유도 없어요."


"...그럼 뭐 말이나 들어봅시다. 그래서 요구하는게, 아니 언제까지. 아, 또 가격은 어느정도 생각하는데요?"


"그거 하나에 오천이요. 당장이라도 연결해 주면 원금 플로스 착수금 포함 두배."


"일억이요?? 뭐... 일단은 구해볼게요. 그리고 지금 말하는데 나중에 딴 소리 없는겁니다? 알았죠?"




업자가 뒤돌아 구석진 곳으로 걸어갔다. 그 뒷통수만 봐도 웃는 얼굴이 보이는듯 하다.

전화를 걸고 의미없는 인삿말과 함께 소리죽인 대화가 이어진다.

중간중간 치솟는 억양에 억소리가 담겨있다.

역시 돈처럼 쉬운건 없다.


















"테이져건 알죠? 그거랑 비슷한거라고 생각하면 되요. 우산 펴고 접는 부분이 스위치.

누르면 대략 이십미터까지 요 작은 핀셋들이 발사 될 거에요.

사용한 다음에는 버튼 다시 눌러서 장비를 꺼요. 잘못하면 당신이 감전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요 플라스틱 우산 앞대가리만 교체하면 끝이에요. 이 카트리지 대당 50만원이에요.

얼마나 쓸 지는 모르겠지만 저 가방에 스무개정도 넣어 놨어요. 아, 그리고 그때 말한대로 좀 쎄게 해놨거든요?

아마 살이 타들어갈거에요. 그리고 맞으면 이건 무력화가 아니야. 그냥 기절을 해버려. 죽을수도 있어.

그니까 절대로 10초 이상 갈겨대진 마요. 진짜 죽으니까."




그말을 끝으로 업자는 벽쪽을 향해 우산을 폈다. 아니 쐈다라고 표현하는게 정확할 것이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우산의 플라스틱 부분이 깨지며 전방으로 얇은 강선이 달린 핀셋 여러개가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그 작은 핀셋들이 벽에 맞고 뒤엉켜 서로 부딪힐때마다 요란한 감전 소리가 들려왔다. 보고만 있어도 고통이 느껴졌다.














































"상,하로 십센치 정도 여유를 주시구요, 좌우로는 꽉꽉 들어맞을 수 있게 거기 적혀있는 대로 부탁드려요."


"참 희안하게 만들어 달라네. 뭔 놈의 관이 이래? 뭘 갖다 쳐 넣을려고 이렇게... 돈 준다니까 하는데말야.

내가 이런거 일 놓은지도 좀 됐고. 시간도 빡빡해서 제 때까지 할 수 있을지는 장담 못 해."


"에이.. 할 수 있으면서. 제 때 만들어 주시면 더 드릴게."


을씨년스럽게 만들어 놓은 목각인형. 그 위에 쌓여있는 긴 세월을 간직한 먼지 구덩이 속으로 남근, 정승 따위를 뫼셔놓고

경쟁력 떨어지는 구닥다리 인테리어에 상호명도 제대로 적혀져 있지 않은 간판을 건 목공소.

기댈 것이라곤 자신의 늙은 자존심밖에 없는 그런 목수가. 찔러주는 돈에 웃음이 그려지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불쌍한 감정이 든다.

믿음직스럽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만한 곳이 없다. 왜 장사를 접지 않았는지 의아할정도로 주변에 거니는 사람이 없다.


"이건 그냥 선생님 좋아서 드리는 거에요. 관 좀 예쁘게 부탁드려요. 빨리 만들어 주시면 더 좋고."


"뭐,뭐 금방이지 이런거! 딱 삼일만 기다려! 아니 이틀이면 돼!"


"그럼 일 다 보시고 전화 주세요. 그리고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제가 여기 찾아온거 다른 사람들한테 비밀로 좀 부탁드려요."


"그건 왜..?"


"개인적인 사정인데.. 밑에 삼촌들이랑 제가 사이가 별로거든요.

선산에 묫자리를 바꾸는데 딴지 걸면 제가 꽤 곤란해지는 처지라..

그럼 또 감사표시는 당연히 드리구요. 부탁드려요."


"나는 뭐 대단한 거라고. 그런거야 뭐 걱정하지 말어."




돈을 쓰기 시작한 후로 죽 느끼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돈은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속성을 띈다.

부족한쪽에게는 소금물처럼 죄짓길 갈망했고, 있는쪽에게는 죄책감을 덜어줬다. 돈. 참 쉽다.





























계획은 다 세웠는데 어떻게 그들을 납치해야 할까. 특히나 양부자는 어떻게 잡아야 할까.

돈 많은 재벌을 잡는다는게. 월급쟁이가 아닌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것들을 잡아낸다는게 어려웠다.

혼자 있는 시간대가 필요했다. 하지만 집에 들어간다 치더라도 각자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서로 붙어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으니

한번에 잡는덴 무리가 있었다.

한명은 여자병신... 한명은 아들병신...




































멀리 클럽 입구에서 양선우가 걸어 나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듯 값비싼 외제차가 멈춰섰다.

그때 양선우가 소리를 질렀다. 뭔가 화가나는 일이 있는것처럼.

분명 저 차는 양선우의 차였다. 그런데 그 옆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 여자였다.

술은 여자를 부르고 여자는 또 술을 부르고. 참 답도 없는 인생이다. 하지만 누굴 평가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누가됐던 곤란하다. 양선우 옆에 아무도 없어야 했다. 그때 화가 덜 풀렸는지 양선우가 골목쪽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이게 마지막 기회임을 직감했다. 차에서 내려 드문드문 빛이 들어오는 골목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벽에 등을 기댄 양선우를 만날 수 있었다. 꽉 눌려진 종잇자락을 주둥이에 물고 양선우는 침을 질질 흘렸다. 떨인가.



"야!"


"...."


"기분 좃같게. 너 뭔데 야리냐?"



날 못알아본다. 그만큼 가벼운 존재였었나보다.



"허, 웃어?"


"푸흐흣.. 끅끅..."


"...이 새끼가 돌았나. 죽고 싶어?"



뒷걸음질 치는 내 발걸음마다 양선우가 졸졸 따라 나선다. 그곳에서 차에 올라 다른곳에 갔더라면. 아니면 여자와 함께 호텔로 향했다면.

내게 이런 관심을 주지 않았다면. 그런 걱정이 사라지고 잡은 물고기에 마음이 놓인다. 낚시대에 찌를 끼웠다.



"너... 뭐야?"





















퍽! 지지직!


















비명도 못지르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젖은 땅에서 몸을 배배꼬는 놈을 바라보며 나는 시간조차도 까맣게 잊고 그 순간을 즐겼다.

소리없이 괴로워하는 놈의 얼굴.

그 갈갈이 찢어발기고 싶은 얼굴들이 죄다 일그러져 갔다. 그리고 충분히 만끽한 후 버튼을 눌렀다.

놈의 몸에 붙은 핀셋을 뽑아 던져넣곤, 놈의 얼굴에 가까이 얼굴을 붙혔다.




숨이 붙어 있는듯 더러운 입김이 내 얼굴에 느껴졌다.

주둥이를 잡고 들어올리자 눈이 완전히 돌아갔다. 그리고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꼭 개새끼마냥 부르르 떨어댔다.

심장이 뛴다. 발목부터 머리끝까지 두근거림이 차오른다.















탑차에 문을 열고 놈의 옷을 벗긴 뒤 관에 몸을 쳐박았다. 인체의 본을 뜬 것처럼 가랑이 쪽에는 역 삼각형의 나무판자가,

겨드랑이에는 차폐막처럼 팔과 겨드랑이를 분리시킨 나무판자가 빽빽하게도 놈의 몸과 딱 맞았다.

영화 킬빌이 떠올랐다. 하지만 블랙맘바는 주먹질 이라도 할 수 있는 틈이라도 있었지 내가 만든건 그런것도 없다.

아무리 발광을 떤다한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다. 만족스러웠다. 그보다도 돈 밝히던 노인의 솜씨라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나는 양팔과 다리에 각각 결박 끈으로 결속시킨 후, 놈의 아가리에 수면제 몇 알을 털어 넣고 물을 부었다.

꾸울꺽. 울대가 꿈틀댔다. 바로 관의 뚜껑을 덮고 그 위에 다시는 열릴 수 없도록 못을 때려 박았다.















































"야이,웬수야. 지금 몇신줄 알어!? 너 다음주면 여기 떠나야 돼 알어!?"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으세요. 전화를 끊지도 제가 하는 말을 끊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양선우는 죽습니다."



말이 먹힌듯 했다. 아무런 말소리도 없이 숨소리만 들려왔다. 곧바로 다음 말들을 주절댔다.



"...제 목소리를 듣고 계시는 동안 사진 세장이 전송될 거에요.

확인은 전화 끊고 본인이 판단하시면 되구요.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지금부터 현금 1억원을 가지고 제가 이 주소로 혼자 와주세요.

장물도 다 받으니까 굳이 현금 아니여도 되고.

집 근처니까. 여기까지 차 타고오면... 오분 걸리나? 그럼 전화 끊을게요. 딱 오분 드릴게."


"자,잠깐만! 잠깐만!"
























[씨발새끼]



지애비를 쌍욕으로 등록해 놓는 자식한테도 부정을 느낄 수 있을까싶다. 어찌됐건 스탑워치를 눌렀다.

애초에 다 가질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부자를 납치하고 다른 사람들도 다 납치해야 한다. 그걸 하루안에 끝내야만 한다.

오분이 거의 다 됐을무렵. 초조함이 밀려왔다. 신고하면 어떻게하지. 내가 붙잡히면 어떻게하지.



그때 멀리서 흰색 라이트가 비춰졌다. 검정색 세단 한대가 급하게 이곳으로 내달리는듯 했다.

그리고 공원 주차장에 멈춘 검정색 세단에서 양회장이 내렸다.



"빨리도 왔네."


"선우! 선우 돌려주세요!"


"우선 돈 받아야죠."


"여기요! 현금 칠천만원! 시계랑 보석이랑 다 갖고 왔어요! 충분할겁니다! 다 가지세요!"



쇼핑백 속을 열어봤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앞뒤 안가리고 난잡하게 쏟아 부은 지폐와 어지럽게 섞인 시계와 보석들을 보고 있으니 안심이 됐다.



"그게 말이죠... 부탁이 한가지 더 있는데요."


"뭐, 뭔데요! 빨리!"




"...간단한 거에요."
































탑차에 두 부자를 실고 나는 다음 타겟인 박진철 교수를 찾아갔다. 과연 새로 이사한 집은 월급쟁이가 사는곳 치곤 으리으리했다.

나는 양회장의 휴대폰을 열어 박진철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 전화를 걸자 반응이 없었다. 다시 곧바로 다시 전화하니 죄송하다는 말이 전화기를 통해서 흘러 나왔다.

나는 미리 녹음해 두었던 양회장의 목소리를 휴대폰에대고 재생시켰다.




"박교수! 나야 양회장! 지금 빨리 나와줘야겠어! 요 근처 공원에서 기다릴테니까 빨리 좀 나와줘! 급하니까 빨리!"




전화를 끊고 기다리니 현관 앞으로 놈의 모습이 비춰졌다.

내게는 단 1초의 시간도 내어주지 않던놈이 양회장 전화에는 새벽에,

그것도 고작 몇 분도 안되는 사이에 튀어 나오는 꼴을 보고 있으니 웃겼다.




"아, 교수님 여깁니다."


"너, 너는?"


"저 알아 보시겠어요? 이거 완전 감동인데요? 기억 못하실줄 알았는데.. 그래서 병원에서도 안만나 주셨잖아요."



놈이 눈을 굴리며 코를 벌렁댔다. 참 열심히도 굴려댔다.



"아까... 회장님이..."


"네. 여기 말고, 저기. 저쪽에 계세요. 따라오세요."



내가 지금 어떤말을 한다한들 절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뒤를 돌았다.

그리고 자작! 하고 발바닥 돌아가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머리도 좋고 눈치도 좋다. 그러니 줄 서기도 사람을 죽이는 것도 쉬웠던 걸테지.

천천히 뒤돌아 들고 있던 우산을 들어 올렸다.








































양회장의 목소리가 있었으니 나머지 두명을 잡아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만선이다. 다섯개의 관. 원하는 고기를 전부 잡았고 피도 싹 빼 놨다. 불안했던 묵은숨이 흘러 나왔다. 시원했다.





































뻥 뚫린 흙바닥 밑으로 내려가 그곳에 털썩 눕고 위를 올려다 봤다.

내려볼때완 달리 어둡고 춥고 답답했다.

이 위로 흙이 쌓여진다. 그리고 세상과의 소리, 빛이 단절된다. 그저 살아있는 상태로 기억을 따라 소리를 상상하고 빛을 봐야한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서 다행이다.




탑차에 올려진 다섯개의 관은 소리없이 조용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내가 느낀 두려움과 걱정들이 한없이 가벼운 것들이였음을 깨달았다.

행동에 거침이 없었고 누구보다 똑똑했다.

그런 놈들이 하찮은 누군가에게 붙잡혀 저기 관에 누워 있을줄 누가 알았을까.

뉴스를 틀어도 인터넷 기사를 뒤져봐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아주 작은 걱정조차도 남지 않았다.

나는 파낸 땅 속으로 우왁스럽게 관을 내렸다.

안에 내용물이 꿀렁대도 내용물들은 미동도 없다. 혹시 죽어버린것은 아닌가싶어 또 걱정이 생겼다.

흥건하게 젖어버린 이마를 걷고, 바람없는 그곳에서 나는 눈앞에 놓은 다섯관을 바라보며 시원했다.































쾅! 쾅! 쾅!

























"일어나 이제 눈 떠야돼."


















관뚜껑마다 달린 작은 여닫이 문을 열자 놈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가장 먼저 양선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꿈뻑댔다.

아직은 눈에 빛이 쐬일테니 눈을 제대로 뜨질 못했다.

그 어둠속에 갖혀 있다 빛을 처음 쬤을 때, 나는 그 기분이 잊혀지질 않는다.

다시 살아보겠다고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을 때 찡그린 표정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어둠으로 갖혀야만 했을 내 심정이.

그리고 또 다시 빛이 쬐여오는 지금 이 순간이 서로 상충하듯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어지렵혔다.

결론은 상쾌함이였다. 후련했다.




"이.. 이게 무슨... 야! 뭐하는거야!! 이거 안풀어!? 이 시x새끼가!!"




일반 관보다 조금 낮은. 그러면서도 단단한 관에 몸이 딱 붙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놈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놈을 처음 잡았던때가 떠올랐다. 웃겼다.

관짝 위에 올라 관을 쾅쾅 짓밟을때마다 바득바득 날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 왠지모를 분통함이 느껴졌다.

겨우 이딴 놈들에게 죽임을 당해야만 했던. 그 죽음을 방조해야만 했던 내가 생각나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 감정을 되새김할 여유는 없다. 나머지 관도 문을 열었다.



다섯놈의 얼굴이 다 드러나고 관짝마다 쿵쿵거리며 놈들을 깨웠다.

한놈 두놈. 밍기적거리며 눈을 꿈뻑대고. 그 미직지근하게 반응하던 놈들이

한명의 목소리 두명의 목소리.. 네명의 목소리 결국 다섯의 목소리가 한 대 뒤섞이고

자신들 위에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날 발견하자, 꼭 사슬에 채인 짐승처럼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극명한 대조. 정확히 경찰서에서 놈들을 처음 봤을 때 역전되지 않았어야 할 위치였다.

나는 갑이고 나는 이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이게 맞는 결과다.



그런대도 나는 안중에 없는듯 하다.

자기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지금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는 그 어떤 수단도 없는 와중에도

놈들은 싸구려 시나리오를 써내려가며 자위질을 해댔다.

돈을 얼마 줘야 한다. 아니 일단은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 아무일도 없을 것이다. 뭐 그런.

정말이지 내가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일까? 이렇게 그들의 앞에 있음에도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할 정도로?

그때 모든 증거를 조작하고 없앴던 형사가 꼭 충성심을 과시하듯 관을 들썩댔다.

빨갛게 충혈된 두 눈으로 노려보며, 죽여버리겠다고 바득바득 대드는 꼴을 보고 있으니

정말이지 눈 앞에 도사견 한마리가 짖어대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데 주인은 나다.

그리고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개새끼한테는 매가 약일 수 밖에 없었다.



관을 건나 훌쩍. 날 향해 대들던 형사의 얼굴을 마주한다.

그리고 작은 핀셋을 놈의 이마에 찔러 넣었다.

놈의 얼굴이 떨린다. 아무런 말도 없다. 씨익 웃으며 버튼을 누른다.



터질것처럼 눈알이 커져선 "큭" "칵" "컥" 따위의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진동한다.

그렇게 너댓번 지져대니 꼭 병든 개새끼마냥 눈꺼풀을 축인채 고분고분한 모습이다.

역시 매가 약이다.



그러니 양부자도 교수도 변호사도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매타작에 주변 개들도 아 내 주인이 이 사람이구나란 것쯤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저,저기 선생님..! 우리 전에 만났죠? 제가 선생님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여기 사람들 살려도 문제고 죽여도 문제니까. 반드시 골치 썪을 일 있을 거에요. 그러니까 제가 도와드릴게요!

완벽하게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저만, 저라도 제발 살려주세요."



묻지도 않은 말에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주 간결하게



"안죽여."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듯 표정에 변화는 없다. 마치 그들을 따라하는것 같다.

개거품을 물고 있는 형사의 얼굴에서 핀셋을 뽑아 방금 쓸대없는 말을 주절인 변호사의 주둥이에 핀셋을 찔러 넣는다.



"히익! 자,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다시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아니라니까?"




입술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쪼그라든 입술에서 "갸갹"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입술 양갈래로 침이 질질 흘러 내렸다.

나는 그짓을 옆자리에 있는 교수에게도 양회장에게도 그리고 양선우에게도 했다. 아무도 예외는 없었다.

그렇게 똑같은 짓을 분배하고 자지러지는 신음과 앓는 소리가 울린 후에야 나는 조용히 주머니에 들어앉은 녹음기를 꺼냈다.




"지금부터 질문을 할건데 주의할게 있어.

밑도끝도없이 사과를 한다던가. 말을 안하던가. 야부리를 턴다던가. 구라를 치던가. 뭔가 꼬롬하다던가.

그러면 이 핀셋을 다시 니들 면상에 처박힐거야. 그리고 계속 틀어 놓을거야. 죽을때까지.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해.

자, 박충선. 너는 증거를 없앴어. 거기 뭐가 있었어?"



축처진 눈이 양쪽으로 돌아가며 욕설을 내뱉는다.



"씨발.. 씨발.."



하지만 기절할것 같아서 겁만 주기로 했다.



"...기회는 두번 없어. 그 안에 있었던게 뭐야."



침을 꿀꺽 삼키고 숨을 몰아쉬더니 이제는 포기했다는듯 형사는 말했다.



"양선우.. 양선우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담겨 있었어.."


"누굴 죽였고, 어떻게 죽였어? 자세하게 말해."


"당신 아버지를.. 양선우가 차로 쳤어.. 그리고 돌아와서... 여러번 밟았어.. "




















"양선우. 대체 왜 그랬어..?"


"......"


상상이 되는듯 했다. 차에 치이고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아버지의 모습이.

바퀴에 밟힐때마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흘러나왔음이 귓속에 들려왔다.

핀셋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놈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화,화나서 그랬어! 화가나서! "


"...뭐가?"


"씨발.. 딴 놈이랑 시비가 붙었는데 왜 갑자기... 왜 지일도 아닌일에 끼어들어서 훈계질이냐고..

그렇게 잘났으면 옷도 후줄근하게 입지도 않았을거고 생긴것도 멀쩡했어야 되는거 아니야!?

쥐뿔도 없는게 쏘아대길래 같잖아서 차로 쳤다! 그래서 뭐! 시발 뭐, 어쩔건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지능이 있다.

하지만 이놈은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는것 같다. 그냥 죽여도 상관없을것 같았다.



".. 그렇구나. 그래서 죽였구나? 고작 그 따위 이유로 죽였구나."


"아니 내 말은.. 자,잠깐! 오지마! 아,아냐! 아냐!

나 안죽였어! 나 말고 저 교수새끼가 죽인거야!

아냐! 아빠가 죽인거야! 아빠가 돈 줬잖아! 맞지?

오지마! 내가 안했어! 아빠! 살려줘! 내가 안 죽였어!

하지마! 하지마! 안돼!!"





































어차피 죽어가는 사람이였다고?

그렇다고 의사새끼란 놈이 사람을 죽여?






































아~ 그러니까 돈 받은 이 형사놈이나 의사놈이나 이런 놈들이 잘못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냥 찔러본 죄밖에 없다?

... 당신이 낳은 자식이 지금 당신 팔아먹고 있잖아.

저 새끼 전화기에 당신 개새끼로 저장돼 있는건 알아?





































조용히 좀 해.

살려준다니까?

아, 안죽어!!

안죽인다니까!!






























































대리석 돌계단을 따라 건물 안쪽으로 들어섰다.

밑으로는 그늘이 진 건물 외벽에 이름모를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누구는 그 앞에 놓인 영정사진 앞에서 소리죽여 울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슬픔을 삭힌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어린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이 하는 행동에 따라 몸을 숙였다.

설레였다.

꼭 소풍을 가는날 같기도 했고 선물을 받은것 같기도 했다.




작은 유골함 앞에 단촐한 가족사진이 놓여져 있다.

카모마일.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 내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꽃말이다. 그 꽃을 아버지의 유골함 옆에 뉘었다.

그리고 녹음을 재생시킨다.



아, 아, 살려줘!

살려줘!

잘못했어 제발!

살려줘!!!



절규와 담긴 목소리가 아버지의 유골함 옆에서 울려퍼진다.

지옥에 있는 죄인들이 질러대는 괴성이 이런거 아닐까.

조용히 아버지께 말했다.



"나는 후련해. 아빠가 그랬지? 사람 돕고 살라고.

근데 내가 아빠한테 물어봤잖아. 나는 사람들을 도운적이 없다고.

그때 아빠가 아마 이렇게 말했었지?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것도 도와주는 거라고 말야.

그래서 나.

죽이지는 않았어.

그러니까 나는 그 사람들을 돕고 있는거야."




비명과 함께 녹음기가 소리를 멈췄다. 그리고 적막감이 그곳에서 맴돌았다.

여긴 죽어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아무도 남들의 핑계에 토달지 않는. 질문하지 않는 납골당이였다.

아무도 내 괴스런 행동에 토달지 않았고 관심조차도 없었다.

그대로 난 녹음기를 아버지의 옆에 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언제였는지 모를만큼 까마득한 기억 속.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기뻐서 우시는 것일까. 슬퍼서 우시는 것일까.

난 아버지와의 마지막 밤. 식탁에 머릴 숙이고 술잔을 기울이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 형편없이 망한 일생을 보낸 인간이라고 생각되던 나의 아버지.

그 복잡한 표정 속 슬픈 아버지의 눈.

그 눈물이.

그제서야 내 눈앞에 선명히 보이는듯 했다.















































..............


























우기다.

한참 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날이 풀려가는 이 시점에 내리는 비는 유독 주변을 눅눅하게 만든다.

그때문에 분유가 굳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물론 이 컨테이너 박스 구조상 밑에가 뚫려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뭐 그래도 상관은 없다.

나는 구멍이 숭숭 뚫린. 그 속으로 애벌레가 들락대는 딱딱한 분유더미를 익숙하게 부셨다.

아주 고운 가루는 아니더라도 그것들을 사발에 옮겨 담고 물을 넣어 휘휘 저었다.

꼭 공평하게 다섯개.

그리고 정성스레 손으로 토닥인 다섯 봉분 위에 사발을 올려 놓는다.



이 정성 가득한 다섯개의 봉분에는 플라스틱 호스가 연결돼 있다.

그리고 그 호스에는 마개가 달려 있다.

나는 호스에 붙어있는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작게 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 소리는 마치 관악기의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짧은 진동이 반복되는 전자음 같기도 했다.

어찌됐건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항상 높게. 그리고 길게 이어졌다.

한번도 틀린적이 없다.

마개를 열면.

길게.

그리고 높게.




나는 익숙하게 펌프의 스위치를 눌렀다.

펌프의 모터가 소리를 내며 우왁스러운 뭔가를 컨테이너 밖으로 배출시킨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번엔 길게 튀어나와 있는 다섯개의 호스에 깔대기를 끼워넣고 그곳에 방금 만들어 놓은 사료를 때려 넣는다.

그러자 또다른 의미의 구륵거림이 똥물이 배출되는 반대편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잘내려가나 싶다가도 역류하고 또 내려가고 역류하길 반복한다.

그래도 뭐 결국 잘 넘어가고 만다.






























놋쇠로 만들어진 거대한 황소의 틀 속으로 죄인이 들어간다.

죄인이 들어가고 문을 잠그면 집행관들은 수순대로 황소의 밑부분에 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안에 있는 죄수가 뜨거움을 참지 못해 몸부림치며 고함을 내지른다.

그 소리를 들으며 팔라리스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본인도 괴로움이 느껴지는것 같아 끔찍한 표정을 지었을까.

아니면 지금 나처럼 즐거움에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을까.








조금씩 작게 웅얼대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울음소리던 비명소리던 그딴게 무슨 상관일까.

살아만 있다라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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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자기가 한 말은 지켰네ㄷㄷㄷㄷㄷ
1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5-10 02:20:20
닉넴이음슴
예스자양강장제님 글인데... 닉변경하고 오신건가욤?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5-11 09:03:52
예스자양강장제
넵 글도 수정하고 다시 팠어용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05-11 10:04:47
닉넴이음슴
와! 기다렸어요!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05-11 10:35:12
탁탁탁으로오줌싼놈
좋다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5-12 23:17:54
월곡동
ㄷㄷ추천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5-16 02:40:54
아리아리수
이 글 때문에 웃대 글보고 추천만하다가 가입하고 댓글 달았어요 기가막히는 창작... 이달의 베스트로 가자!!
2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5-16 18:57:22
굵직한이쑤시개
흡입력이 어마어마 하네요.. 정말 오랜만에 로그인해서 추천까지 드립니다 ! 그런데 김성태가 처음엔 검사로 나오다가 나중에 변호사로 바껴요 오타인가요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9-05-17 17:28:22
양촌
에고 오타네요... ㅠㅠ 감사합니다...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9-05-18 18: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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