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학과
제목 춤을 추는 나무(2011)
작성자 환상괴담
번호 76308 출처 창작자료 추천 86 반대 0 조회수 6,623
IP 59.xxx.xxx.xxx 작성시간 2018-01-01 10: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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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왁!! 야, 기척 좀 내라!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

어릴 적부터 난 인기척이 없기로 유명했다.

날 숨기려는 의도없이 그저 친구에게 다가갔을 뿐인데도 친구들은 늘 나를 발견하면 깜짝 놀라곤 했다.

나에게선 누군가가 다가올 때 느껴지는 분위기를 전혀 읽을 수 없다고 친구들은 말했다.

그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나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런 특징 때문일까, 나의 성격도 내 특징과 닮아갔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최대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걸 좋아했다.

그래도 부모님께는 좋은 아들, 친구들 사이에선 별난 친구로 원만히 살아왔다는 건 내 복이겠지.

자연스레 난 낮에 나가는 것도 기피하게 되었고, 밤에 야간 세차 일을 하고 낮에는 자택 알바를 하면서

수입을 채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날도 야간 세차 일을 위해 밤 늦게 출근하던 날이었다.





무더운 여름 날씨답게 열대야가 극성을 부리는 어느 여름 밤, 나는 출근을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집 앞 사거리를 지나 GS25 편의점 하나를 건너면 나타나는 직선로,

그 직선로의 끝에 위치한 빌딩 지하가 바로 내가 출근하는 세차장이다.

별 일없이 그 날도 GS25 편의점 앞을 막 지난 시점이었다.



파르르릇 - !

물에 젖은 새가 온 몸을 털어내는 소리..?

어떻게 들으면 거센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며 잎사귀가 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시간에 물에 젖은 새가 몸을 털다니? 이 주변엔 그럴만한 수돗가도 없다.

그럼 나무 소리? 그럴리가, 열대야의 여름 아래 그럴만한 바람은 불어오지 않는다.

가던 걸음을 우뚝 멈추고 슬쩍 뒤를 돌아보자, 나무 한 그루가 과연 서있긴 했다.



'뭐지'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으면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난 그저 잘못 들었겠거니 넘겨버리곤

세차장으로 향했다.





그 다음 날, 오늘은 일감이 없으니 하루 쉬고 모레 보자는 사장님의 문자에

일이 없어서 노는게 살짝 언짢기도 했지만 간만에 나에게 휴가를 주는 셈 치고

마침 같은 시기에 휴가를 낸 친구 하나와 술 약속을 잡았다.

낮에 누굴 잘 만나지 않는 내 체질상 친구를 만나는 것도 밤 늦게였다.



[ 얼굴 보기 힘든 놈! 어디로 가면 되냐? 진짜 드라큘라 새끼 ㅋㅋㅋㅋㅋㅋ ]

< 드라큘랔ㅋㅋㅋ 너 우리 동네 GS25 알지, 그 건너 구노포차로 와라 >

[ 알았어. 나 자동차 없이 가지만 술은 조금만 하자. ]

< 그래 구노포차로 와 >



살짝 일찍 출발한 나는 늘 그렇듯 사거리를 지나, GS25 앞에 달하려던 순간이었다.



파르르르르르르르-



바람은 불지 않았다.

그리고 난 봤다.



나무가 춤을 추고 있었다.

외부에서 힘을 가하는 건 절대 없이, 그건 순전 나무 스스로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테크토닉을 추듯이?.. 그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리듬이 섞인, 분명한 '춤'이었다.

나는 친구와의 약속도 깜빡한 채 그 자리에서 멍하니 나무의 춤을 바라봤다.



순간 나무가 춤을 멈췄다, 그 순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무는 그저 우뚝 서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옆 블록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가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어나갔다.

남자가 멀어지고, 나무는 미묘하게 움직였다.

주위의 '기척'을 살피려는 듯이.



그리곤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짝을 찾아서? 아니면 단순히 즐거워서?

이유는 모른다, 아직 어떤 식물학자도 나무가 사람이 곁에 없으면 춤을 춘다는 사실을

학계에 보고한 적이 없을테니까. 하지만 내 눈 앞에선 분명히 나무 스스로가 춤을 추고 있다.

저 나무가 왜 나를 눈치채지 못 했을까 생각했을 때 난 너무도 쉽게 결론에 다다랐다.

어릴 적부터 내겐 인간의 기척이 없었다.

내가 여기 왔단 걸 내 육성으로 알리지 않으면 친구들은 마치 내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날 눈치채지 못 했다. 지금 저 나무도 마찬가지인거다, 저 나무는 날 인식하지 못 했다.

나무가 움직이다는 사실에 경악하기도 잠깐,



- 카톡왔숑!

" 엇. "

벌써 구노포차에 도착한 친구의 재촉 카톡에 폰이 울리자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뱉었고,

그 순간 나무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언제 춤을 췄냐는듯이 꼼짝 않고 통나무처럼 빳빳하게 서있었다.



[ 야 ㅡㅡ 안 오냐? ]

< 미안 곧 갈게 >



친구와의 술자리는 즐거웠지만 머릿 속에선 내내 춤을 추는 나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밤에는 세차를 하고, 낮에는 자택 부업을 하고..

난 평소처럼 사는 걸로 보였겠지만 내 머릿속은 혼란 속에 가득 차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이면 나무가 밤새 춤을 춘다,

이 말을 누가 믿어줄까? 그 광경을 실제로 목격한 나조차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정신과를 가서 상담을 받아볼까, 내가 환각을 보는 건 아닐까?

그렇게 괴로워하던 어느 날 나는 과감히 사장님을 찾아가 세차 일을 그만 두었다.

자택 알바도 정리해버렸다, 내 맘 속을 괴롭게하는 단 하나의 질문의 진실에 접근해야 했다.



' 식물이 정말로 춤을 추고 있었을까? '



성실하게 일해왔다. 세차 사장님도, 부업 지점장도 내가 그만두는 걸 아쉬워했다.

나도 아쉬웠다, 그들과는 솔찬히 정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 뒀다.

이대로 괴로워할 순 없었다.



일을 그만 둔 바로 그 날, 나는 이례적으로 아침부터 산청행 시외버스에 올라탔다.

난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 생각을 눈치챘는가?



난, 지리산에서 거대한 진실과 마주하고 싶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인적이 없는 밤, 지리산 전체가 식물의 춤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자 마침 알맞은 곳이 바로 지리산이었다.

때 못 가리는 집중폭우가 강물을 범람시키고 등산로를 녹아내리게 만들어,

지리산 복구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리고 등산객의 출입이 일체 통제되는 등

민간인의 지리산 출입이 하절기 내내 금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들어가냐고? 물론 무단침입이다.

나쁜 짓인 건 안다. 하지만, 난 이 진실을 만나고 싶다.





" 헉, 헉.. "



등산로가 망가지고, 징검다리가 매몰된 길을 손으로 집어가며,

두 손과 두 발로 간신히 넘어가며 이 악물고 산을 올랐다.

없는 길을 만들어내고, 때론 벼랑에 몰리고,

랜턴조차 쓸 수 없었다.

휴대폰으로 GPS 위치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문명의 이기를 하나도 사용해선 안 된다,

내가 식물의 춤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의 기척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억지로 만든 빛, 억지로 만든 소리가 하나라도 들킨다면

난 이 산에서 거대한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

그렇기에 난 맨몸으로 지리산을 올라야 했다.



" 헉, 헉! 쓰읍.. "

이마의 땀을 훑어내고 숨을 고르며 난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기가 어딜까, 암간에 적응된 눈이 점차 산의 풍경을 내게 보여주었다.



" ...! "

초행인 지리산인데다 어떤 정보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의 주위, 그리고 나의 반대편, 나의 아래,

나의 위, 나의 좌우,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산맥.

이 곳에서 바라다보이는 산맥의 장대한 경치..

여기다, 여기가 바로 진실이 있는 곳이다.



스스스스..

산 전체가 미세하게 떨린다,

한 나무 한 나무, 그 나무의 한 잎사귀 잎사귀가 조용히 몸을 푼다,

시작된다,

스스스스스스스



작은 나무는 율동처럼, 큰 나무는 군무를 그리며,

작은 풀은 작은 새의 날갯짓처럼 하늘거리고,

거대한 나무는 용이 비상하듯 춤을 피워올린다,



춤을 춘다,

이건 마치 오케스트라..

아! 얼마나 아름다운 진실인가,

인간들은 모른다!

이 풀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어쩌면 태고부터, 인간이 음악을 만들어내기 전부터

존재해왔을 이 천연의 오케스트라를!



파르르르르-

스스스스스스 !



나뭇잎과 나뭇잎, 풀잎과 풀잎, 악기는 없지만 이 안의 리듬과 운율이

산맥을 울리고 단 하나의 아름다운 진실이 된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본 적이 없다.

난 동화된다,

나도 식물이 된 것처럼 한 발 한 발이 리듬 위를 걷는다,

식물들의 대협연 속에 나도 두 눈을 감고 위대한 공연에 참여한다,







절벽 끝까지 춤을 추며 다가와버렸다.

나는 지리산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내 입가는 지금 미소를 띄고 있다.

이 아름다운 진실...

지금 이 감동 그대로 난 사라질 것이다.

내 말을 믿지 않겠지만 그대 믿으라,

당신이 무심코 지나친 그 나무 한 그루가 오늘 밤 춤을 추고 있다.

추악한 인간의 불빛과 소음 몰래 위대한 진실이 오늘 밤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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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베스트1
행운의고자
나무 : (코카콜라를 마시며) 파르르르르르! [2]
29 1 추천 반대 댓글
[이동]
2018-01-01
[13:43]

211.xxx.xxx.xxx
답글
베스트2
수제치킨
나무 : I AM GROOT
10 0 추천 반대 댓글
[이동]
2018-01-04
[23:51]

111.xxx.xxx.xxx
환상괴담
2011년에 썼던 글인데... 올려봅니다 :)
2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8-01-01 10:51:05 59.xxx.xxx.xxx
행운의고자
나무 : (코카콜라를 마시며) 파르르르르르!
291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8-01-01 13:43:18 211.xxx.xxx.xxx
빵사왔음뎁혀왔음
아닠ㅋㅋㅋㅋㄱ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8-01-01 23:49:31
1.xxx.xxx.xxx
po잉여wer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00 추천 반대 삭제 신고 2018-01-02 17:18:21
147.xxx.xxx.xxx
두덕리농민
인간인 이상 알 수 없을 미스테리를 몰래 파헤치는게 매력적이네요 마치 관음증..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8-01-02 01:31:21 61.xxx.xxx.xxx
폭식찌먼
몬가 잇을법한이야기같아용 ㅎㅎㅎ 잼께잘봣습니댜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8-01-04 06:14:28 122.xxx.xxx.xxx
수제치킨
나무 : I AM GROOT
1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8-01-04 23:51:37 111.xxx.xxx.xxx
jinu012
미발표작이군요 ㅅ.ㅅ 호홋 감사합니다 환상괴담님 올해 책출판도 성공적이길 바라요!!!!
1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8-01-10 06:33:03 211.x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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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 조차 사람인 주인공에게서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나무가 춤춘다는 사실보다 더 오싹하게 느껴지네요. 어쩌면 주인공은...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18-04-11 21:19:42 175.x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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