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병원 가는 날. 잠을 청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맛있는 몇 잔을 비웠다.

더디지만 조금씩 회복하는 나날들로 소소한 만족감을 누리던 날, 그 이가 갑작스런 이별을 고할 때만큼 갑작스런 네 새로운 만남을 알게된 지 사흘차가 되었다.
이틀은 통곡했고, 오늘은 소리질렀다.
이틀은 새벽 세 시 넘어서꺼정 잠못 이뤄서, 오늘은 조력을 좀 얻어봤다.

-슬슬 떠난 그 이를 보낼 준비가 되어간다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당장 순간이 되니 그렇지 못함을 깨달았다.
당장 십년치 메시지가 담긴 방을 나가는 데만 해도 나는 열 달이 넘게 걸렸다. 이별 사흘 전까지 사랑을 말하던 그 활자더미들은 그야말로 허물기 힘든 동화 속 궁전이었다. 딱히 오간 문장의 내용이 아름다워서라기보단 활자들이 머금은 세월의 손떼가 순애보의 전당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다만 내게는 이 손떼처럼 느껴지던 것들이 그이에겐 손부채질 몇 번에 날아갈 향기더미 였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는 데에는 짧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함께 나눈 세월에 비하면 짧았고, 그이의 처분시간에 비해 나의 처분시간은 오래 걸리고 있다. 마음에 걸린 시간의 관성력에서 그이는 어찌도 빨리 벗어났단 말인가......-

하는 일련의 사고사슬에 엮여 며칠이곤 밤을 헤아리게 되는 게 이별 맞은 이들의 불면원인 중 하나일거야.
위스키로 그 사슬을 녹일 순 없어도,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어 사슬에 묶여있다는 사실은 놓게 만들 수 있다는게 경험적 학습이다.

오늘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사람을 몇 조각 버려보기로 해본다. 십년치의 빈 자리를 석달만에 채워버린 이를 부러워하며 잠을 청해본다.

위스키를 다섯 잔 정도 마시면 좋은 점은 잠들지 못하는 밤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준비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다음 날 입냄새도 안 난다는 장점이 있다. 물타지 않은 캐스크 스트렝스일수록 효과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