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異魚島）:제주도 서쪽 바다에 위치해 있는, 예로부터 고기잡이에 나선 선원들이 거센 풍랑이
칠때면 어김없이 모습이 보였다고 전해지는 전설이 있는 섬.



"보트가 무사히 상륙했습니다. 다들 조심스럽게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선내에 스피커를 통해서 음성이 울려퍼지자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보트로부터 뻗어나온 계단을 통해서 섬으로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이어도는 꽤 커 보이는 섬이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발길이 허용되지 않았던, 금기시된 섬 이어도의 해변은 상당히 음습하고 적막했다. 모래사장의 모래는 발을 디딜때마다 연신 푸석거렸고 주변에는 흔히 해변에서 보이는 바다벌레 한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산 위에서는 바람소리로 추정되는 음침한 괴성이 연신 울려왔다. 구름이 하늘을 드리우고, 서늘한 바다바람이 일행을 휘감았다. 날은 기묘하게도 어두웠고, 파도도 거세게 해변으로 밀려오며 울렁이고 있었다. 해변 주위에는 흉흉하게 생긴 기암괴석들이 여기저기에 박혀서 바다 바람을 맞고 있었다. 정지혜의 조수로 따라온 박수진은 그 기암괴석이 왠지 모르게 소름끼쳤다. 그의 나이는 24세로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은 다른 사람들 처럼 철저한 미신론자가 아니였다. 오히려 무속신앙 쪽에 관심이 깊기 때문에, 그 반대에 가까웠다.

그렇다. 그녀는 귀신을 믿고 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무슨 일이 있으리라곤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불쾌한 느낌이 자꾸 치솓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지혜의 설득도 있었지만, 결국은 이번 위령제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기대하에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막상 섬에 도착해 보니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둥그런 모양의 바위 위로 보이는 두개의 구멍은 풍화작용의 영향으로 생겼을 터이지만, 마치 그 구멍을 통해 정체불명의 존재가 연신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그 암석이 갑작스럽게 자신을 공격할것 같다는 미친 생각이 들었다. 정체를 알수없는 희미한 안개가 계속해서 허공을 부유해서 가시거리가 극히 좁았기에, 주위에 대한 경각심이 드는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지리학자 장선일은 섬의 전방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전방에 위취한 산에는 여기저기 듬성듬성 수풀이 펼쳐져 있었고, 가장 높은 산봉우리는 해수면 위로 삼백미터는 될 것 같았다. 천년동안 방치된 무인도 그 자체를 바라보는 장선일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막연한 공포감이 뒤섞여 있었다.

주변을 연신 기웃거리던 김주완이 말했다.

"자. 이제 우리가 해야할 기초적인 탐사에 대해서 의견을 나눠 봅시다."

"일단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은 좀 무리일듯 싶습니다. 무인도로 방치되었기에 산으로 오르는 제대로 된 길도 없거니와 수풀 투성이 입니다. 일단 저희는 해변지역을 돌면서 섬의 전체적인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작업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장선일이 입을 열자 김주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왠지 모르게 꺼림찍했던 것이다. 방송국 PD 정진수가 앞으로의 촬영 일정을 간략하게 일행들에게 알려주었다. 일행들은 해변을 따라 이어도를 탐사할 것이고, 카메라맨이 후방에서부터 그들을 촬영하면서 나아가기로 했다. 어차피 이번 방송의 핵심은 무당이 위령제를 하는 모습을 담는 것이었기에, 딱히 뭔가 설정을 한다던가 할 필요는 없었다.
위령제는 일단 기초적인 탐사를 끝낸 후에 지내기로 했고, 그때까지 PD와 카메라맨이 할 일이라곤 조용히 그들의 모습을 담으며 뒤를 따르는 일 뿐이었다.

"그럼 움직여 보도록 합시다."

김주완이 말하자 일행은 움직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뒤에서 약간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날씨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보트조종사 였다. 그는 계속해서 점점 거세지는 파도와,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좀 그렇긴 하군. 원래 가장 밝을 시간인데 날씨가 좀 음침하구만."

김주완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하자 조종사는 그게 아니라는듯 설명했다.

"제가 오랫동안 배를 몰아왔고, 날씨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뭔가 이상합니다. 갑자기 몰려온 구름도 그렇고, 바다바람도 생각보다 거셉니다. 기상예보에 따르면 오늘은 화창한 날이라 했습니다. 구름한점 없고 태양이 높게 치솓은 맑은 날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날씨가.."

김주완은 하늘을 한번 살펴보았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기는 했다. 일단 안개가 자욱한 섬에서 햇빛 한 점 없다는 사실이 약간 찜찜했다. 하지만 근처 해변가를 돌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김주완은 별다른 문제가 생길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뭐.. 기상예보가 틀리는게 한두번인가? 하지만 먹구름이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비는 오지 않을 것 같군. 단지 근처 해변만 돌아볼 계획이네. 그정도면 문제가 없지 않겠나? 설사 일이 틀어져서 비가 내리더라도 보트로 돌아오면 그만이고."

잠시 멈칫하던 조종사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출발해 보세."

일행은 해변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주완이 고용한 경호원 2명이 일행 주위를 엄호하면서 움직였기에, 사람들은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장선일은 흥분감에 들떠있었다. 그는 연신 주위에다 사진 플래쉬를 터뜨렸다. 안개때문에 약간 희미하긴 했지만, 그의 고급 카메라는 아주 충실하게 이어도 섬의 모습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누군가가 옆에서 고성의 비명을 질렀다.

"꺄악!"

모두가 다급한 눈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폈다. 살펴보니, 황민주의 부인 김정혜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졌던 것이다. 해변가에 넘어지자 김정혜의 고급 드래스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

"뭐 이딴 길이 다있어! 이런 곳을 어떻게 가라고."

"아니.. 이봐! 이럴거면 왜 따라온거야? 아니 그럼 여기가 무슨 호텔 로비라도 되는지 알아? 당신 지금 하고 온 꼬락서니를 봐! 그 옷이며 구두며.. 도대체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황민주가 화가나서 김정혜에게 소리쳤다. 그는 처음부터 김정혜의 동행이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애시당초 그가 김정혜하고 결혼한 것도, 그녀를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집안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금실좋고 화목한 가정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김정혜는 속이 상했다. 사실 자신이 이곳을 따라온 이유는 어떻게든 황민주와의 사이를 개선해 보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눈치는 빨랐기에, 진작에 황민주가 자신을 그냥 집에서 놀고먹는 한심한 여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고,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그런 생각을 바꿔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자자.. 싸우지 마세요. 황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다쳤을지도 모르는데 먼져 가서 부축해 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김주완이 옆에서 끼어들자, 황사장은 어쩔수 없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김정혜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곧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행은 순조롭게 앞으로 나아갔다. 김주완은 건설업자 황민주와 건설 계획에 대해서 담소를 나눴다. 그의 표정에는 벌써부터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릴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약간 떨어져서 그들의 모습을 보고있던 김비서는 음울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은 이 섬에 정말로 들어오기 싫었다. 사실 김비서가 어제 노인의 경고를 들은 후, 그는 김주완을 찾아가서 자신을 이번 탐사에서 빼달라고 정중히 부탁 했었다.

하지만 그런 김비서를, 김주완은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쏘아볼 뿐이었다.

"자네.. 그래서 이제와서 일에서 빠지겠다고? 왜이러나? 김비서 원래 안이랬잖아? 바늘이 가면 실이 가야 지 안그래?"

".... 예?"

"이봐 김비서. 바늘이 가는데 따라오지 않는 실은 어떻게 되는지 아나?"

김비서의 가슴 한구석에서 오한이 돋았다.

"그냥 잘라버리는 거야. 불량품은 잘라야지."

'불량품..'

그 말이 김비서의 가슴을 때렸다.

"그래서 안갈텐가?"

김비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김주완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래야 김비서지."


문득 그 생각이 떠오르지, 김비서는 짜증이 마구 치솓았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불쾌한 섬 따위에 들어와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곳에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 그냥 아무것도 하는일 없이 따라만 다닐 뿐 아닌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빠지겠다고 하는 자신을 굳이 협박 비슷한 어조까지 사용해 가며 이곳에 끌고온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예전부터 김주완이란 인간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도가 지나쳤다. 자신을 종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자 분노심조차 들었다.

일행이 해변을 따라 움직인지 어느덧 20분이 흘렀다. 김비서는 문득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보트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왠지 모르게 보트에서 멀어지는게 두려웠기에, 김비서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벌써 20분이나 걸었고, 희뿌연 안개 때문에 이미 보트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김비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다시 돌렸다.

'응?'

김비서는 갑자기 온 몸이 싸늘해 짐을 느꼈다.

분명히 무엇인가가 있었다!

고개를 앞으로 돌리는 순간, 나무 사이에 무엇인가 희끄무래한 것이 그의 시야에 밟혔던 것이다! 이상한 안개에 의해 잠시 눈이 이상해 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으로 마구마구 눈꺼풀을 문질렀다. 그리고 김비서는 조심스럽게 그 정체불명의 물체가 있던 장소로 고개를 향했다. 그곳에는 단지 나무 한 그루가 바다바람을 받으며, 가지를 흐느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자신이 어쩌면 너무 긴장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잠깐이면 된다. 잠깐동안 이들과 따라다니다가, 자신은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 섬에 오지 않을 것이다.. 김비서는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 때, 또다시 무엇인가가 그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쳤다.

그는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일행을 미친듯이 살피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여덟"

자신까지 아홉. 그리고 옆에 있는 무당까지 열, 마지막으로 뒤에 있는 카메라맨 까지..

"열하나.."

김비서는 가슴 한구석이 무섭도록 싸늘해졌다.

"무슨 일이에요?"

정지혜가 계속 안절부절 못하는 김비서를 옆에서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김비서는 대답을 하지 않고 연신 머리를 굴렸다.

자신이 이토록 후방에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뒤에는 틀림없이 세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한명은 무당이었고, 다른 한명은 카메라맨, 그리고 다른 누군가 한명이 더 뒤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무당은 옆에 있다. 카매라맨은 뒤에 있다!

언제부터 사라졌던 걸까?

틀림없이 12명이 출발했고, 내릴때도 12명 이었다.. 게다가 경호원이 좌우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다.. 경호원은 좌우만 경계하고 있었지, 뒤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충혈된 눈을 빠르게 굴리며 인원을 파악한 그는 없어진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

"마.. 맙소사.."

사라진 사람은 보트를 조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물인 조종사였다!

황민주와 담소를 나누며 걷던 김주완은 담배 한대가 피고 싶다는 생각에 김비서를 불렀다.

"김비서. 담배 한대만 주게."

아무런 반응이 없자, 김주완은 다시한번 외쳤다.

"김비서. 담배 한대만 주래도?"

"어... 없어졌습니다.."

"무슨 소린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김주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걷던 일행도 일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김비서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보트 조종사가 없어졌습니다!"


（점점 조여오는 공포.. 이어도（異魚島） - 6 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