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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애소설) ** 은 유 하 ** Vol. 25~완결 + 에필로그
작성자 
플래티넘브론드
번호 204068 출처 창작자료 추천 20 반대 0 IP 203.132.xxx.186
2006-04-01[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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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하] Vol. 25





- 뒹굴... 뒹굴...




나 : 하아....




- 뒹굴... 뒹굴... 뒹굴....




나 : 후우..... 미친다, 정말.





.....20분째.

침대 위에 널부러진 채, 뒹굴대고 있는 시간.

원장 선생님을 비롯한, 학원 내의 모든 선생님들이 상급학원 워크샵에 참석하는 바람에,

오늘은 학원에 가지 않는다.

이상하게 아침 일찍 눈이 떠져버린 덕택에,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로 침대 위를 뒤척거리기

시작했는데, 좀처럼 몸이 개운해지질 않고 있다.

꿈자리까지 뒤숭숭해주시고.... 어우....




나 : ...유하, 잘 가고 있으려나... 하필 이럴 때 또 핸드폰이 고장이래, 걔는... 하여간에....




눈을 감고, 그녀를 상상한다.

눈처럼 하얗고 솜털이 보송보송 나있는 밀가루 인형같은 얼굴.

잔머리가 많이 뜨는 정전기 쟁이지만, 가늘고 섬세해서 촉감이 굉장히 좋은 머리카락.

포커페이스에 도도함, 그리고 귀족적인 프라이드가 한데 섞여 있는 표정.

...그렇지만 내 앞에서는 초승달 모양으로 눈웃음짓는, 삐죽 드러난 덧니만큼이나 귀여운 애교.



헤에...?

3월에 사귀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거의 10개월 다되가네...

1년도 금방이겠다.

우리 1년되면 뭐해주지...

...또 영진이한테 물어봐야하나... 그 자식, 요즘 여자친구랑 사이 안좋다고 난리였는데...

킥킥킥... 그래도 이 방면에서는 영진이가 레벨 높으니까, 조언 한번 구해봐야지.

음... 선물이나 해줄까...?

아르바이트 제대로 시작해야겠네, 그럴려면...

나도 워낙 받은게 많으니까... 그것만큼 또 선물해줘야지.




나 : ...어디...




머리속에 무언가 생각이 스친 나는, 몸을 한번 굴려 침대 밑 바닥을 향해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머리와 두 손을 침대 밑으로 집어넣고선, 큼지막한 박스 하나를 꺼내 올린다.

유하와 사귀면서, 그녀와 관계된 모든 것들을 보관하고 있는.... 내 나름의 보물상자.

선물 받은 것, 같이 산 것, 사진찍은 것, 그녀가 보내준 편지....

부피가 큰 것들을 제외하곤, 모두 차곡차곡 넣어 보관하고 있는 상자.



히힛...

어디 한번 볼까...?



아! 이 스웨터 생각난다.

킥킥... 내가 뜨개질 선물 받고 싶다고 했더니, 대뜸 해주겠다고 해놓고서...

막상 입어보니까 완전 쫄티였는데. 큭큭.... 아~ 그 때 그 당혹스러워하는 표정 떠오르네.



음... 교환일기장.

한 150일 계속 했나?

결국 시간이 없어서 포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진짜 진지하게 꾸몄었는데...

한시간 넘게 투닥거려서 결국은 내가 가지기로 했던 거지만. 푸하하.



....오! 이거! 이 목걸이!

둘이서 신촌 갔다가 외국인 아저씨한테서 산건데...

그 아저씨 리어카 지키고 서있는게 카리스마 있어 보인다고...

....이거 선물받으면서 난 뭐해줬더라...? ....아! 맞다. 귀걸이 사줬었구나.

이미테이션 알러지 있어서 순금이나 순은 아니면 안된다고 퇴짜맞지만 않았어도 좋았는데.




호오.... 이런 사진도 있네....

수영장 놀러가서 찍은 거... ...오~ 생각 외로 애가 볼륨있단말야.... 히힛.

학원 애들이랑 같이 찍은 거.... .....눈썰매장 가서 찍은 거... ....으하하하! 이 때 진짜 추하게

자빠졌었는데. 사진기 들고 가길 잘했지. 킥킥.... 이 사진 뽑은거 알면 나 죽을지도 몰라.

.....풋, 이건 또 언제 찍었대...

아하~ 우리집 비었을 때 놀러왔다가 찍었던거구나... 그 때 침대에서 잠들었을 때 내가 몰래

찍었던 건가본데... 자는 모습 한번 예쁘네. 천사가 따로 없다, 천사가.

으음... 나중에 유하랑 결혼하면, 첫날밤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 한번 짜놔야 되겠네.





.....한동안 그렇게 침대 위에 걸터앉아, 추억을 곱씹으며 행복함에 젖었다.

이렇게나 같이 해온 일들이 많은 거구나, 우리....

아직 할일이 태산 같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같이 해왔구나.

하아~ 정말....

태어나길 잘했어.

이 녀석 붙잡기를 잘했어.




.....조용히 상자를 정리해, 다시 침대 밑으로 집어넣는 나.

상자를 집어넣자마자, 조금은 들떴던 기분이 다시 차악 가라앉는다.

거, 참 정말....

감기라도 걸렸나?

희안하게 몸에 쇳덩어리를 달아 놓은 기분이네.

침대 밑으로 꺼지는 느낌이다.




나 : 어우... 모르겠다, 정말.... 입시 스트레스냐 이게? ....뒹굴거리기나 계속할까.... 유하한테
전화 언제오려나... 이거이거 또 길잃어먹고 헤매는거 아냐? 길치쟁이.... 풋.




조용히 중얼거리며 양 팔을 깍지 껴, 머리 뒤로 지탱시키는 나.

양 다리를 하늘 방향으로 들어올리며 위 아래 운동을 시작했다.

그 순간 밀려오는 하품에, 뻐근함을 날려보려 과장된 움직임을 취해보였지만 허사였다.

따뜻한 이불더미에 파묻혀, 나른해져가는 몸이 편안하기도 하련만.....




- 똑, 똑.




엄마 : 아들~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고 뭐해~ 할일 없으면 엄마나 좀 도와줘.


나 : 어... 뭔데요? 뭐 할일 있어? 안그래도 진짜....




내 방문을 빼꼼히 열고, 뒹굴대는 나를 바라보시던 엄마가 지원을 요청해왔다.

심란한 마음과, 쭈욱 계속되는 그 음울한 정체불명의 감정.

그리고 조금의 무료함과, 핸드폰이 안되는 유하의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해야하는 입장.

그 모든게 적절하게 버무려져, 지금의 내 컨디션은 최악 그 자체였다.



.....제길, 엄마나 도와드리면서 좀 잊어봐야겠다.





엄마 : 자, 엄마 옆에 앉아서 밤 좀 쳐. 밤이 싸길래 왕창 사왔다. 그간 입시하느라고 고생했다고
엄마가 아들한테 특별 서비스 하는거니까, 제대로 쳐. 알간?


나 : 예, 예. 걱정 붙들어매요. 아~ 밤 보니까 또 땡기네....




조그마한 과도를 집어들고, 물이 가득채워진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에서 알밤 하나를 건져올린다.

탱글탱글한게 삶아놓으면 진짜 맛나겠네...

...아! 그러고보니까 유하도 밤 좋아하는데....




엄마 : ....아들. 요새 여자친구랑은 잘 지내?


나 : ....아, 유하요?





.....어느 순간부터, 나의 이성교제 사실을 알게되신 엄마.

한번 아니다 싶은 건 불같이 화를 내시는 성격이셔서 많이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넓게 포용해주시면서 건투를 빌어주셨다.

여자친구한테 정신 팔려서 입시를 등안시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린 결과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 : 네, 잘지내요. 오늘 '나'군 시험보러 지방 내려갔어요.


엄마 : 지방? 멀리갔나?


나 : 아뇨. 천안이에요. 버스타고 간다고 했는데...


엄마 : 눈길 미끄럽겠네...... 고속도로 꽤 막힐텐데 오늘. 너희 아버지도 차 두고 나가셨잖아.


나 : 그러게... 나도 그게 걱정이네. 오늘 새벽같이 나간다고 했었는데... 밖에 눈 많이오죠?


엄마 : 응. 함박눈 내리더라.





- 착, 착....



엄마 : 손 조심해. 날 제대로 서있는 거니까?




엄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른손이 미끄러지며 듣기 싫은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 챙...!!




나 : ....아야!!! 어후....


엄마 : 왜그래? .....어이구, 이 화상아~ 조심좀 하지... 많이 베였어? 어떻게 말 끝나기가
무섭게 일을 저지르냐, 이 촐랑아!




물이 담긴 플라스틱 통 안으로 똑, 똑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

오른손으로 쳐내던 칼날의 끝이, 내 왼손 네번째 손가락 쪽으로 튕겨나가며 상처를 내버렸다.

밤을 위로 밀어올리면서 껍질을 까내다가, 밤 껍질의 미끄러운 표면 때문에 손등 위로 밀려나

버렸던 것.

조금 욱신거리긴 했지만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




나 : ......




피가 떨어지는 손가락의 지혈도 잊은 채 잠시간 멍하니 있는 나.

그런 내 모습에, 엄마가 기가막히다는 듯 재촉하신다.




엄마 : 뭐해? 빨리 피 닦아내고 지혈 안하고서는.


나 : ....엄마.


엄마 : 응? 왜?


나 : .....이상해요.


엄마 : 왜? 뭐가 이상한데... 어디 아프기라도 해? 열 있나?


나 : 아니... 그런게 아니라....





....예리한 과도의 칼날에, 표면이 긁혀나가면서 흠집이 생긴 커플링.

영진이와 여정이, 그리고 기타 친구들의 조언을 엄청나게 긁어모은 뒤 어렵게 유하의 손가락

사이즈를 알아내어 그녀의 생일 때 선물했던 것이었다.

눈썰매장 안에서 반지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신경을 썼던 기억....

아릿한 그 때의 일이 떠오르며, 문득 유하의 얼굴과 겹쳐 머리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나 : .....엄마도 이런 적 있어요? 아무 이유도 없는데 무기력하고... 계속 불안하고... 뭐가 꼭
뒤에서 쫒아오는 거 같고... 심장이 막 쿵쿵 뛰고... 현기증이 자꾸 나고... 몸이 무겁고...


엄마 : 엥? 독감 아니야 그거? 왜그래 갑자기... 진짜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어디 잘못된건가?
우리 아들은 그다지 열심히 하지도 않아서 괜찮을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노력과는 반비례하는
건가?


나 : ....엄마아... 장난할 기분 아니고.


엄마 : 킥킥... 근데 진짜 왜그럴까....?


나 : ....몰라 나도... ....아... 엄마, 나 TV보면서 해도 되죠? 아무래도 기분이 영 이상해... 이대로
가만 있으면 왠지 그냥 미쳐버릴 것 같아요.


엄마 : 그래, 그럼 그러던지. 이 엄마는 불쌍하게 혼자 부엌에서 쪼그려 앉아서 우리 아들 먹일 밤
다듬을테니까 아들은 어여 가서 TV봐. 괜찮아, 괜찮아.


나 : .....엄마아아.....


엄마 : 푸하하하하... 엄마 아직 안녹슬었지? 어디 나가면 30대로 본다니까, 이놈의 유머감각때문에.





밝게 웃으시며 내 머리를 쥐어박는 우리 엄마.

피식, 미소짓고는 신문지 몇장과 밤이 담긴 통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TV라도 보면서 기분전환 해야지...

아, 그러고보니 손가락 지혈도 안하고 있었구나, 참....

정신없다, 정신없다.





TV를 켜고, 채널을 잠시 돌려본다.

이리저리 돌려봐도, 역시 이시간대에 하는 기분전환용 프로그램은 찾기가 힘들었다.

'동물의 왕국' 재방송을 잠시 시청하다가, 문득 유선방송에서 나오는 오락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렸다.





나 : 킥... 푸하하하... 아, 진짜 웃겨. 쟤네 미친거 아냐? ....크하하하하~




싸구려 개그 프로그램이었지만, 지금의 내게는 아주 좋은 소재.

신나게 웃자.

웃고 떨쳐내야지.

......킥... 뭔지도 모르는데 떨쳐내자는 거 자체가 웃기네.





-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나 : 아, 엄마 내가 받을게요.




요란하게 울리는 집 전화.

웃느라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소매로 훔친 후,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나 : 아, 네. 여보세요.


유하 : 쫑기이!


나 : 오오!! 유하야!! 어디야?! 왜이렇게 늦게 연락해, 바보야. 걱정하고 있었는데.


유하 : 헤헤... 미안. 공중전화 찾는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시간이 좀 늦어서, 이제 겨우 고속버스
터미널 도착했어. 한 3분 뒤면 출발한대.


나 : 그래... 목소리 보니까 컨디션은 괜찮은거 같네. 그럼 어디 한번 체크 시작해볼까?


유하 : 예~! 빨리, 빨리. 시간 없으니까 빨리~!


나 : 4B연필 새거 4자루. 중간크기 4자루. 밀도지우개. 일반지우개. 커터칼. 수험표. 참고자료.
주민등록증. 시계. 시험장 약도.


유하 : 응. 응. 응. 응. 응. 응. 응. 다 있어.




손가락을 꼭꼭 접으면서 야무지게 대답하는 유하.

....아니, 그럴 것 같은 유하.

이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만 들어도, 그녀의 행동쯤은 훤히 예측가능했다.

세심하고 꼼꼼한 애니까 이런건 내가 말 안해도 이미 다 챙겼겠고...

...어디, 그럼....




나 : 프링X스. 이온음료. 초콜렛. 이것도?


유하 : 응. 모두 다.


나 : ...그럴 줄 알았지! 봐주는건 프링X스랑 이온음료 뿐이랬잖아! 살찌려고 초콜렛 또 먹어?!


유하 : ....헉, 걸렸다. ....많이 안먹으면 되잖아아... 그리구 단 음식은 두뇌 회전에도 좋댔어.


나 : ....킥. 알았어, 알았어. 그럼 마지막으로... ...내 사진.


유하 : 어, 그건 안챙겼는데? 별로 안중요해서 빼먹었나보다.


나 : ...뭐야?!


유하 : 헤헤헤. 농담~ 당연히 있지이. 지갑 안에 고이고이 모셔놨으니까 걱정마.


나 : ...킥킥....


유하 : 아, 벌써 차 출발하려고 그런다. 쫑기, 이제 나 갈게~! 시험장 가서도 전화할테니까 핸드폰
항시 대기해놔야돼~!!


나 : 어, 그래!! 덤벙거리지 말고! 괜히 기분좋다고 까불지도 말고! 들뜨지도 말아! 언제나 안전제일
인거 너 알지? 눈길 미끄러우니까 시험장 입구에서 넘어지지도 말고! 그리고 떨지말고 시험잘봐~!
니가 최고다! 니가 수험생 탑이야! 수석도 니꺼고!!


유하 : 응, 응! 알았어, 오케바리!! 쫑기 이제 나 진짜 갈게! 자기, 사랑하고... 있다 또 전화!!


나 : 그래~ 나도!! 아참, 유하야! 너 있자....




- 뚜, 뚜, 뚜, 뚜.....




.....이런...

끊어져버렸네....

할말 더 있었는데....

후우... 어쨌든 그래도 컨디션은 좋은 것 같아 다행이다.





엄마 : 여자친구야? 유하?


나 : 네. 이제 버스타고 간대네요.


엄마 : 그래... 눈오는데 그냥 기차타고 가지.


나 : 쩝... 그러게... ....휘유....


엄마 : 엄마랑 대화할 때는, 꼭 시체같더니 여자친구 전화오니까 대번에 바뀌네. 섭섭한데~


나 : 훗, 그래도 내 마음은 엄마가 1등. 유하는 2등.


엄마 : 하아~? 결혼하고 나서도 그러나 어디 보자. 안그러기만 해봐. 며느리로 들어오는 년
제대로 갈궈줄테니까.


나 : ....엄마, 엄마. 년이 뭐야 년이.... 거 참 말좀 곱게 해요. 우리 이제 지성인 하기로 했으면서.





엄마에게 장난스레 핀잔섞인 말투를 건네며 키득거렸다.




후우....



- 두근.... 두근....




TV에서 흘러나오는.

개그맨들의 목소리가 이상한 굴곡으로 귀에서 맴돈다.

어어.... 진짜 왜이러지....




나 : .....




- 두근... 두근... 두근....





나 : ......푸하하... 웃기네..... 저거.





-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나 : 후우... 죽겠네... ...엄마, 청심환 혹시 있어요? 나 갑자기 심장이 벌렁벌렁해.





-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

................

........







================================================================================
To. 남편쟁이, 쫑기.

짜안. 이건 몰랐지? 내가 어제 니 가방에 몰래 넣어둔거야. 버스 기다릴 때. 킥킥킥...

아~ 진짜... 솔직히 나도 내일, 시험보러 가기 진짜 싫은거 알지? 그치만 어쩔 수 없는거 알잖아.

맘 넓은 쫑기가 다 다 이해해줘야해요.

나 이번시험보고 올라와서 세종대까지 시험보면 정말 결과 어떻게 되든 쫑기랑 붙어있을래.

그래도 되지? ....참, 우리 엄마가 너 한번 보여달라고 그러셨는데...

아직 나도 그렇고 쫑기도 그렇고 부모님 한번도 못뵜잖아.

우리 엄마 말이, 사람을 사귀면 꼭 부모님한테 먼저 소개시켜줘야 한댔거든.

그러니까 우리 차차 그렇게 하자.

휘유... 일찍 일어나야되는데 자꾸 잠이 안온다. 쫑기한테 전화할까 했는데, 자고 있는거 깨우면

미안해서 그냥 이렇게 쪽지 끄적이는걸로 대신해요.

이상하네... 갑자기 막 어리광 피우고 싶어지는데, 목소리도 듣고 싶어지는데.

아득한 느낌이 들어. 왜이러지? 이제 계속 볼 수 있는데.

아, 처음에 쫑기 만난거 갑자기 생각난다.

그 때 나한테 이상한 음료수 하나 주면서 말 걸었었잖아, 나 처음 학원 왔을 때.

사실 나 그 음료수 되게 싫어했었거든. 푸하하하.

근데 어떻게 보면, 그 때 쫑기가 준 음료수 거절한게 잘한 거 같아.

아마 그게 인연이 되서 우리 이렇게 사귀고 있는걸테니까.

만약에 그거 받았으면, 아마도 우리는 아직 친구? 아니면 남남? 휘유~ 모르겠다.




나 지금, 쫑기가 선물해준 커플링 쳐다보고있다?

센스쟁이. 킥킥킥... 아직 이거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네 그러고보니....

그 땐 너무 정신없어가지구, 그냥 눈물만 흘렸던 거 같은데. 그치? 나 웃겼지?

너 뭐 없어졌다고 눈썰매장에서 찾고 막 그랬었잖아.

중요한거 잃어버린 줄 알고 얼마나 놀랐었는데. 사람들도 무지 많고 해서.

이벤트같은 거 꿈도 안꿨었는데 눈 뭉치 안에서 반지 꺼내줄 때 진짜 감동먹은거 알지?

나 남자친구한테 그런 이벤트 받아본거, 쫑기가 처음이야. 그래서 더 그랬나봐.




....아... 졸린다.. 헤헤.

이제 그만 적고 자야지. 내일 또 학원에서 쫑기 얼굴 보려면.

내일 실기시험 치는거, 난 꼭 잘할거라고 믿어. 쫑기야 워낙 열심히 하니까.

내가 준 엿 잘 먹었지? 응? 엿먹었어? 안먹었으면 꼭 엿먹어. 꼭, 꼭!

.....푸하하하하하하~ 되게 웃긴다, 이거. 농담이니까 삐지면 안돼?

우리 같은 대학 못들어가더라도... 꼭 같이 있자.

나도 대학 들어가서 잘생긴 남자가 막 말걸어와도 무시하고, 멋진 선배가 와서 밥 사준다고

해도, 배부르다고 할게.

O.T가서도 술 쪼금만 마실거고, M.T같은거 가도 왕게임 절대 안할거야.

내가 또 한다면 하잖아. 쫑기는 알지? 내가 성격 하나는 꼼꼼한거.

히히.. 그러니까 쫑기도, 대학 들어가서 예쁜 애들이 눈웃음 쳐도 씹어버리구, 섹시한 선배가

잠깐 놀자고 꼬드겨도 집에서 엄마랑 논다고 도망쳐. 킥킥.




그럼... 잘자구. 좋은 꿈 꾸고...

사랑해, 쫑기.

이 세상 누구보다도.



....킥... 쑥쓰럽네, 역시... 아직까지는 이런거 어색해.

나중에 결혼하면... 그 땐 자연스러워 지겠지?

그러엄... 바이바이~



From. 여편쟁이, 유뽕.



P.s) 사람을 사랑하는 건, 운명처럼 어느날 찾아오는 것도. 달콤한 초콜렛처럼 감미롭게 다가

오는 것도. 그렇다고 죽을만큼 힘든 고통 후에 함께하는 것도 아니래.

그냥 서서히. 조금씩... 그렇게 서로에게 물들다보면... 그게 바로 가장 단단한 사랑이 되는거래.

싸우고... 화내고... 그러면서 사과하고... 그리고 또 다시 웃고....

그렇게 일상적으로 지내면서, 미운정 고운정 다 쌓으면 그게 그냥 사랑이래. 그렇게 소박한거래.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린 어쩌면 운명처럼 찾아오지도, 달콤하지도, 죽을만큼 아프지도 않았잖아?

...그러니까 우린... 아마도 정말 진짜 사랑을 하고 있는 걸꺼야.

그것도 제일... 순수한 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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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하] Vol.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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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전해드립니다.

며칠전부터 계속되던 폭설이, 결국 대형참사를 빚어내고 말았습니다.

상습결빙구간으로 분류되던 이곳 XXX고속도로 XX구간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으로 변해있습니다.

오늘 오후 1시경, 강변 고속버스 터미널을 출발해 천안으로 향하던 XX고속사의 우등버스 한대가

얼어붙은 도로와 폭설로 인한 시계제한으로 인해 중앙분리선을 들이받은 후, 잇따라 가드레일과

충격하면서 뒤따라 달리던 승용차 3대와 화물차와 연쇄충돌하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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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




미친듯이 울부짖는, 무슨소리인지도 못알아들을.

그렇게 흥분해있는 목소리의 전화가 온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처음에... 난 누군지도 몰랐었다.

처음보는 전화번호, 그리고 처음듣는 목소리.




간신히 그 목소리가...

얼마전 딱 한번 마주친, 유하의 친구.

시현이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현 : .....어떡해요..... 어떡해요......





소식을 알려준 후, 계속해서 반복되는 시현이의 흐느낌.

.....거짓말 같은 그 이야기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하하.

얘가 뭐래니 지금...

....아침부터....




나 : .......엄마!!!!!!!





.....믿기지 않는다.

믿을 수 없다.

아니, 믿어서도 안된다.




바닥에 널부러진 핸드폰이 맨발바닥에 밟혀 플립이 박살나는 것도 모른 채, 나는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엄마를 소리높여 불렀다.





엄마 : 어우, 귀청이야. 얘가 얘가 아침부터 왠 호들갑이야?


나 : 엄마!! 신문!!! 아, 신문!!!


엄마 : 신문 거기 식탁 위에 있잖아. 왜? 합격발표 신문에 났대니?


나 : ......




아침부터 소란인 나의 모습에, 앞치마를 풀며 내게 물어오는 엄마.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신문을 나꿔채며, TV를 켬과 동시에 1면을 향해 시선을 내리꽂았다.






나 : .......하... ...어.... 뭐... 뭐야... 이게....





....고속도로 위에 처참하게 구겨진 한 고속버스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인쇄되어있다.

빼곡한 글자들로 채워진 그 면을 침착하게 읽어내려가는 나.

...아니, 침착하려 애썼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머리 속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릴만큼 심장이 미쳐있었으니까.





엄마 : .....아~ 그거? 안그래도 오늘 아침 뉴스에 나오더라. 눈길에 미끄러졌다는데... 어휴...
진짜 요즘 세상 무서워서 마음대로 어디 가지도 못해....


나 : ....호... 혹시... 엄마, 이거... .....아, 아니야. 아니에요. ....엄마, 나 잠깐 나갔다올게요!


엄마 : 뭐? 얘가 이 아침부터 어딜나... ....야! 한종기!!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엄마의 외침을 뒤로한 채, 나는 어제밤 입고 잤던 트레이닝 바지

바람으로 부서진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현관 앞에 놓여있는 슬리퍼를 대충 발에 우겨넣으며, 현관 문을 열어젖힘과 동시에 유하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 뚜르르르.... 뚜르르르....




나 : ......




아파트 복도를 따라,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쿵쾅쿵쾅....

복도 안을 시끄럽게 울려대는 발소리도, 내 심장박동에 묻혀 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나 : ....이런 씨X!! 왜 안받는거야!!!! 염병할!!




상스러운 말을 입에 올리며, 현관 유리문을 박차고 주차장 쪽으로 뛰어간다.

반복되는 통화음만 들리는 핸드폰을, 거칠게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으며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나 : ....아저씨!! 빨리 출발해주세요, 빨리요.





목적지를 말하는 것도 잊은 채, 출발하라고 미친듯이 재촉하는 나.

추운 겨울날, 희끗희끗한 눈발까지 날리는 날씨에 얇은 반팔 면티 하나에 나일론 트레이닝복을

입은 나를 바라보는 아저씨의 눈빛이 오늘따라 더 거슬린다.




....유하의 집으로 달리는 내내, 나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댔다.

계속해서 통화중.

....좀 받아라, 진짜!!!



관자놀이 부근에서, 내 심장이 요동치는 박동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다.

쿵쾅. 쿵쾅.

말도 안돼, 진짜 그럴리 없어.

어디서 개같은 소리를 주워듣고.....




나 : 아저씨, 좀 빨리가면 안돼요? 저 진짜 급하거든요?


기사 : 아, 손님. 길을 좀 보고 말씀하셔야죠. 지금 안그래도 눈길 미끄러워서 사고도 잦은데...


나 : 후우... 알았으니까, 최대한 좀 빨리 부탁할게요!!





괜한 나의 신경질에 기분이 언짢은 듯 대꾸하는 택시기사 아저씨.

....10번도 넘게 유하의 집에다가 걸던 전화기를 고쳐잡는데, 문득 한쪽으로 생각이 미쳤다.

아... 맞아.

너무 황당해서 잊고 있었다.

시현이, 시현이!




수신자 목록을 뒤져 시현이의 것으로 보이는 번호에 커서를 가져다댄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얼마간의 컬러링이 닫혀있는 내 귀로 흘러들어왔고 곧이어 흐느낌이 계속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 나, 종기! 아까 전화했었죠?! 자세히 좀 말해봐요. 뭐가 어떻게 됐다고요? 나 지금 유하네 집
으로 가는데 집에 아무도 전화를 안받는데...!


시현 : .....


나 : 야! 제발 사람 애간장 태우지 말고... 어? 똑바로 말좀 해봐봐요. 뭐가 어떻....


시현 : .....유하네... 집에... 아무도 없어요.... 지금....


나 : ....왜. ....왜 아무도 없는데요....


시현 : .....다 병원에... 있어요.... 나도... 지금 병원이에요....


나 : .......뭐? ....거기 왜.... ....거기 왜 있는데요?!!


시현 : .......


나 : .....훌쩍거리지말고 똑바로 말해!!!!!!! 씨X!!!





......전화기에다 대고, 갈라지는 쇳소리로 소리치는 나를 희안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기사 아저씨.



아저씨...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요....

나 지금....

이럴만하거든요?




......병원이래요.

우리 유하가.

병원에 있대요.....




...새하얀 눈꽃송이가 내리는 2002년 1월 초의 아침.

택시 안에서 나는 절규했다.

영문도 모른 채, 믿고 싶지도 않은 헛소리 때문에.

답답한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기분에.

나는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그렇게 절규했다.


...............................

.................

.........







여정 : ......


영진 : .......


꽃님 : .....웃겨... 말도 안돼... 진짜... 개소리하지마....


나 : ........


꽃님 : .....씨X... 지금.... 이거, 나 믿... 믿어야 되니? ....어?


시현 : ......





사고가 난 장소, 그 근처지역의 병원.

바닥에 쓰러져 실신 직전인 유하의 어머니와,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시는 유하의 아버지.

....그리고 그 정신없는 틈바구니 속에...

우두커니 서있는 우리....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그렇게 닥쳐온 이 일에....

누구 하나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아니, 결론을 내리면 안되는 거였다.





나 : .....유하야.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리워진 하얀색의 병원용 시트....

그 얇은 천 안쪽에... 사람 형체를 한 물체가 덮여져 있다.

가슴을 쥐어 뜯으며.

오열하는 유하의 어머니를 뒤로 한 채.

....나는 희미해지는 정신을 애써 바로잡으며.

떨리는 손으로 시트 끝자락을 부여잡는다.





영진 : ....한종기..... .....하지마라. 그러는거 아니다.




낮게 울리는 영진이의 목소리.

.....들리는 데, 분명히 내 귀에 들리는 데, 들리지 않는다.

순간 비릿한 피냄새가 올라온다.

내 어금니에 짓이겨진 아랫입술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 : ......




....천천히.

시트를 벗긴다.

추운 겨울날, 맨몸으로 서있는 듯.

온 몸에 돋아있는 그 이유모를 추위 때문인지.

.....시트를 잡고 있는 내 손이 정신없이 떨려왔다.





나 : .......어....? 이... 이거..... 뭐....





......나의 두 눈을 믿지 못하겠다.

벗겨진 시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

....흉칙하게 엉겨붙은 피딱지가...

얼굴과 목 언저리 곳곳에 붙어있는 이 사람.

어디에 긁히고... 어디에 찔렸는지.

잔인하리만큼 상처가 나있는 얼굴을 가진 이 사람.

......알아볼 수 없을만큼 심하게 망가져있는데, 거짓말처럼 한눈에 알아봤다.




마... 말도 안돼 진짜...

.........뭔데... 이게....





꽃님 : .......




계속해서 상소리를 섞어가며.

거짓말이라고 중얼거리던 꽃님이가...

....벗겨진 시트 위에 누워있는....

차갑게 식어있는 한 여자를 보고는 그대로 병원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아랫입술을 굳게 다무는 영진이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여정이....

시현이는 이미 탈진직전의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과 함께 서러운 울음을 토해낸다.





나 : ......하... 으하하... 하아....




어?

.....왜 웃음이 나오지.

왜 이러지....

머리가 어떻게 됐나봐.

아무 생각도 안나고, 아무 느낌도 없는데.

새하얀 백지처럼 그렇게 티하나 없이 깨끗한데....

그냥 웃음이 나온다.

어이없는, 어처구니없는.

그런 웃음...




나 : .....얘... 얘 아니에요... ....의사 선생님...? 얘 아냐.... ....이거 좀 봐요.... 유하가.... 유하가
이렇게 못생겼을리가... 없잖아요.... 예? 유... 유하가.... 이럴리가 없...거든요? 선생님... 선생님!


영진 : .....종기야, 그만하자. 옆에 유하 부모님도 계셔. ....너 이러는거 실례다.


나 : ....야... 놔봐봐. 아니... 사람 잘못 데려다놓고.... 이거 뭐하는.... 하... 하하하..... 진짜....


영진 : ....니 마음 알겠는데... 이러면 안돼....


나 : ....놔보라고, 이새X야!!!!!




시트를 부여잡고 있는 내 손을 말리는 영진이.

그리고 그런 영진이의 팔을 세차게 밀쳐내는 나.

.....나와 아이들이 서있는 이 공간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들려오는 흐느낌도, 서러운 울음소리도.

미친듯이 뛰는 심장도, 차갑게 흔들리는 내 손도.

...모두 조용했다.





......야.

.......야, 은유하.

장난치냐, 지금?

....나 이런거... 진짜 싫어하는거 알잖아... 어?

너... 내가... 너랑 같이 시험보러 안갔다고.... 삐져서 이러나본데...

내가 진짜... 진짜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두자... 응?

나 정말.... 이런 장난 싫어해....

누구보다 잘 아는애가... 왜 그러는데....





나 : .....아, 황당해서... 진짜 말도... 안나오네.... ....나 어제... 유하랑 통화도 했어.... 통화도 했다..
유하가... 뭐.. 뭐라고 했는줄 알아? 조심해서 다녀온다고 했어.... 시험 잘 친다고... 프링X스랑...
...초콜렛... 살찐다고..... 나... 나는....


꽃님 : ....으아아아아!! 으어... 으헉... 으흑... 흑... 으아아~!!!


나 : ....야... 왜 울어.. 시끄럽게.... 이제 그... 그만해라 다들... 장난 그만 치고... 진짜... 진짜.....
하.. 하하하하..... 아, 황당하네 정말... 진짜.....


여정 : .....흐윽.. 흑... 종기야... 그만해.... ....유하.... 으흑... 흐윽... 그만....


나 : ...뭐... 뭐!! 뭘 그만해?! 어?! ....야, 은유하!! 빨리 안일어나!! 일어나! 빨리!!!





시트를 잡고 있던 손을 그대로 뒤로 뻗어, 덮여있는 그것을 바닥에 팽개쳐버렸다.

이윽고 드러난, 피로 얼룩져있는 한 여자의 전신이 내 두 눈에 틀어박혔다.



.....내가 선물한 목걸이.

피로 물들어있는, 내가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 옷.

찢어발겨진 옷 사이로....

처참하게 상처나서 피범벅이 된 여자의 몸이 보인다.

검붉은 피딱지가 붙어있는 부위 사이로, 원래 지니고 있었을 새하얀 피부.

.....다리 쪽으로 시선을 내린다.

무릎 관절이 반대쪽으로 꺽여있는 것을 확인한 후, 좀 더 아래로. 아래로....

한쪽 발에만 반쯤 신겨져있는 운동화.

그것도 내가 사준 거.....

....반 아이들한테 밟힐 까봐....

체육시간에 꾀병까지 부려가며 양호실에 있을만큼...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던 그 운동화.

그리고....

내 왼쪽 네번째 손가락에 껴진 반지와....

.....똑같은 디자인의.....

커플링....





아아?

....하... 푸하하하하...

.....유하... 맞구나, 너?

........이 꼴을 하고... 눈감고 있는게....




진짜...

유하.... 너구나....




나 : .......하.... 으하하하.. 하.... 하아....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눈 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

가슴에서부터 끓어넘치듯이 올라오는 뜨거운 응어리가.

목구멍을 채우면서, 무언가 왈칵 뱉겨져나온다.

눈물. 콧물.

.....한번 터지기 시작한 그것들은.

도저히 겉잡을 수 없을만큼의 모습으로, 나의 몸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나 : .....으헉... 아학.... 으으허.... 허억....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있는데, 마치 눈을 감고 있는 기분이다.

....어지러워.

메쓰껍고 역겨워....




유하야...

나, 나... 나 왜이러지?

살려줘, 유하야...




- 짝!!!!




영진 : 이자식아, 너만큼이나 다른 사람도 믿기 힘들어!! 정신 안차릴래!!! 애새X처럼 왜이래!!
정신차려!!! 야! 한종기!! 임마!!




바닥에 쓰러져, 게거품을 물고 있는 나를 일으켜세우며 영진이가 따귀를 올려붙였다.

하하...

이놈, 복싱한 놈인데...

맞으면 진짜 아픈데...

...하나도 안아프네... 이상하게.





나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나는.

탈진을 할 때까지.

정말 신기할 정도로 노랗게 바래진 병원의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치밀어 오르는 화와,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갈갈이 몸이 찢겨지는 고통을 느끼며.

절규하고 절규하고 또 절규하고.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면서 절규했다.


.................................


........................


...............








훌쩍거리는 울음소리가 퍼져있는 학원 교실.





원장 선생님, 부원장 선생님, 강사 선생님들.

건국대 강사형. 카운터 은선누나. 수채화반 수진 선생님.

그리고 그 뒤로 주욱....

영진이와 여정이. 성원이. 꽃님이.... 그리고 모든 학원 아이들.




낯설기만 한 풍경은 이틀 전과 마찬가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초점잃은 시선으로.

교실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나.




유하가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렸던 의자와 이젤 주변에는.

사람들이 한송이씩 내려놓은 흰색 국화가 가지런히 쌓여가고 있었다.

....솔직히, 퉁퉁 부어있는 눈으로.

그게 국화인지 백합인지... 구분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하얀 꽃잎을 가진 꽃들이 수북하게 쌓여갈 수록.

교실 안을 메우던 울음소리도.

점점 더 크게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나 : ....웃기지 마.... 거짓말.... 웃기지 마... 거짓말... 안믿어. 못믿어.....




정말 그랬다.

난 그걸 믿으면 안되었다.

믿으면 안돼.

...진짜.

말도 안되는 그런 개소리를....

나는 믿을 수 없다.




.....하하....

유하가....

이젠 내 곁에 머물러줄 수 없단다.

그렇게 나와 함께...

같이 있고 싶어하던 그 애가....

이젠 내 곁에 있어줄 수 없단다.

배신했다 나를.

...나를 배신하고....

......차갑게 식어버렸다.





원장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선생님들이 내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내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

그 뒤를 이어, 같이 입시를 했던... 유하와 친하던.... 유하를 좋아하던....

아이들이 내 곁으로 몰려든다.

똑같이 위로의 말을 건네고, 똑같이 내 어깨를 두드린다.

울음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어떡하냐는 말만 반복한다.




하...

얘들 진짜 웃기네...

선생님들도 정말 웃겨요.

왜들 그러지...

....누가 죽기라도 했어요?

......왜들 그렇게... 죽을 표정으로...

슬픈 얼굴로.... 그렇게 나를 보는거에요?

왜 그렇게....

.....인정을 하는 듯한 얼굴들이냐구요.





나 : .....안죽었어. .....거짓말. 유하 시험보러 갔어요... 유하 시험보러가서... 아직 안왔어요...
좀 있으면 와요.... 세종대... 시험보러... 올거란 말예요....


영진 : ...새X야... 이제... 그만해...





내 머리를 거세게 감싸 안으며, 영진이가 자신의 품에 나를 끌어당겼다.

....그대로 힘없이, 녀석의 품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하하...

안돼... 이러지마 영진아.

임마, 왜 이래 자꾸...

....이러니까 정말....




.....유하가 나 두고....

먼저 하늘나라 간게...

진짜 사실 같잖아....





나 : 으흐... 으흑... 흐으으윽... 어... 으헉.... 윽....




눈가에 촉촉하게 맺혀있던 눈물이.

또다시 흘러내린다.

한번 터지면 진짜... 못참는데.

...어제도 새벽까지 한숨도 못자고 이랬는데...

안돼... 울면 안돼....




나 : ....으허어어어... ...끅... 꺼억.... 으허어엉.... 어억... 끄윽....


영진 : ...실컷 울어 임마... .....기운 빠질 때까지... 계속 울어라.... 울고 싶은 만큼... 울어...




내 등을 두드리는 녀석의 손이.

.....너무 처량해서....

녀석의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모든 상황이 사실이라고... 꿈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있는 듯 해서...







나는 그렇게 교실 바닥에 주저 앉으며 목놓아 울어젖히고 말았다....



[은유하] Vol. 27





며칠 후.

나를 통틀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만 19세의 은유하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쌓여가는 국화와, 진한 향 내음.

침울하게 가라앉아있는 학원 공기.

밝고 티없던 유하가 남기고 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어두운 것들만 남아있다.




식어버린 유하의 몸을 화장한 후.

그녀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바닷가의 파도 위에다.....

살며시 뿌려주고 돌아왔다.

유하의 부모님, 가까운 친인척.

그리고 학교와 학원의 친구들.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녀를 추모해주었다.

그것들을 보고있던 나는... 반쯤 나가있는 정신에도.

그녀의 인간됨이, 후세의 추억 속에서도 한 점 손색이 없을거라고....

스스로를 자위했다.





코끝을 살랑이는 바닷바람이 나의 뺨을 쓰다듬으며 옆으로 비껴나갈 때,

유하의 생전 피부색을 꼭 닮은...

.....그녀의 하얀 몸들이 춤추면서 팔랑거리는 것을 보았다.





마치 내 몸 주변을 감싸돌면서.

가기 싫다고...

가기 싫다고..... 곁에 있고 싶다고.....

이대로 떠나보내지 말라고....




.....그렇게 간절히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나 : ....끝까지 응석부리네... 어리광쟁이.... 헤헤... 누군 보내고 싶은줄 아냐... 바보야....





들릴듯 말듯한 나의 중얼거림에.

모두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들의 눈빛을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충분히 동정으로 젖어있을거란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눈빛들을 마주하는 순간.

양 어금니를 으스러질 듯 깨물며 버티는....

내 독한 결심이, 단 한번에 무너진다는 것 또한.

나는 알고 있다.




짐짓 모르는 척.

나는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

나무상자 안에 들어있는, 마지막 한 줌의 유하를.

소중하게 양손으로 감싸쥐었다.

내 몸 주변으로 흩날리고 있는 하얀 분들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예전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목소리로.

차분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 : 어리광 그만 피우고... 먼저가서.... 기다리고 있어.... ....같이 못가줘서... 미안.






- 샤르르르..... 사악....





이윽고, 조용하게 흘러오던 바람이 차분하게 멈추며.

유하를 지평선 너머로.

부드럽게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

..................................

모든 게 정리되고, 이제는 각자의 생활로 돌아갈 일만 남아있었다.

한사람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상처와 아픔을 공유하게 되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결국, 먼저 간 사람이 못다 이룬 '여생'에 대한 책임감일 수도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 몸을 실은 우리들은, 이미 그 법칙을 알고 있는 듯 했다.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는 시간이 지나고, 제일 먼저 꽃님이가 가슴을 쥐어짜듯이

말을 뱉어냈다.





꽃님 : .......수고했어.... 새X... 독하다, 너? 눈물 한방울 안흘리네...


나 : .....킥.... 나 먼저두고 가버린 애... 뭐가 아쉽다고 우냐...?


꽃님 :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편해.


나 : ......이제 너도 그만 짜, 질질질... 이미지 안맞게 뭐냐. 마스카라 다 번졌어.


꽃님 : ....방수되는 거 썼는데... 젠장.... 보지마.





평소였음 불같이 화를내며, 사정없이 폭력을 휘둘렀을 그녀도.

오늘은 조용했다.

모두들 그랬다.

영진이도, 시현이도, 모두들도.



마치...

내 몸을 감싸돌던.

유하의 하얀 몸을 휘감고 천천히 응석부리던.

그 바람처럼.....





그렇게 조용하고 평온하게.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유하를 보내준 그날 밤.

나는 굉장히 긴,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짧은....

꿈을 꾸었다.





유하와의 첫만남에서, 마지막까지....

마치 잘 만들어둔 영화처럼...

생생하게, 마지막 한 마디까지 또렷하게....

그래서 더더욱 가슴저린.

그런 길고도 짧은 꿈을 꾸었다.

미치도록 생생한 그 꿈 덕분에...

나는 꿈을 꾸는 도중에도,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만큼....

잠꼬대를 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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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중에서 몇명은 세종대 목표이신 분들도 있으신 것 같은데,
우리 즐거운 마음으로 경쟁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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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인삿말만 받을게. 음료수는 너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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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혼나겠다... 아! 저 무슨 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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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수업 받아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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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종기 맞지? 소묘 C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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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 ....야, 니들... 자세히 보지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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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 ....오늘 하루만 커플 하면 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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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헷... 역시, 우리 아들뿐이야. 쫑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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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내면 지낼 수록 왠지 너는, 자꾸 보호해주고 싶어져.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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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고... ....글쎄... 좋은데 꼭 이유 있어야돼? 그냥 좋으면 좋은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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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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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놀래? ....아까 교실에서... 나 쳐다보면서 이야기했잖아. 나 들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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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니까 진짜라고 그러지~ 진짜 귀여워. 다른 여자애들도 인정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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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기. 네 손으로 직접.... 빼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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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 입술에 오돌오돌 나있는 그런 거..... 더이상 안나게 해줄게.
그동안 마음고생 많이 시켜서 정말 미안해. 쫑기는 착하니까, 나 용서해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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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하지마아! 애들 진짠줄 알잖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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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너... 너더러.... 내 허락도 없... 이... 온몸에 피칠하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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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저 때문에 너무 힘든 날을 보낸 남자친구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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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알았어. 쫑기 목소리 그렇게 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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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반칙해?! 왜 쫑기 혼자 막막 나 좋아해!!
그것도, 내가 도저히 못따라갈 정도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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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쫑기가 머리 쓰다듬어주면 왠지 기분은 좋아, 그냥.
투박하게 헝클어버리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부드럽게 보호해준다는 느낌이 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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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왜 맨날 토닥토닥 해주는게 꼭 거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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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저질쟁이. 평생 영진이랑 잘먹고 잘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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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부터는... 그런 소리 하지마.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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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학....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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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기쁜데... 슬픈거.. 한개도 없는데... ...왜 그냥 눈물이..
계속... 계속 나는지 모르겠어... 우리 쫑기... 나 우는거... 진짜 싫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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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귀여우니까 상관없어. ....어유~ 그랬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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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너한테 괜히 부담주기도 싫은데다가, 너랑 있으면.... 자꾸 흔들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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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에 다녀와서 많이 많이 같이 있어줄게. 응?
우리 입시도 끝나면 진짜 둘이서 같이 하루종일 놀러다니자. 그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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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응! 알았어, 오케바리!! 쫑기 이제 나 진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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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사랑하고... 있다 또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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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랬어....

분명히...

있다가 또 전화해준다고 했어.

...나랑 약속했었다....

생각해보니까....

너 거짓말쟁이. 약속 안지키냐 왜.....




....아니... 미안해.

어쩌면 넌....

누구보다도 애타게...

나한테 전화를 걸고 있었을지도 몰라....

고장나버린 그 핸드폰으로...

아니면.... 다른 또 누군가...

버스 안에 타고있던 사람의 핸드폰으로...

제일 먼저 애타게...

날 찾으면서 울었을지도 몰라....






젖어들기 시작한 내 눈가를 타고, 그렇게 참았던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그 뜨거운 액체가, 내 가슴을 얼릴만큼 차갑게 느껴지자...

나는 벌떡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의 마지막 말을..... 꿈에서 듣게된다면...

정말 미칠 것만 같았기에.

정말 참을 수 없게 되버릴까봐....

그렇게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불 꺼진 방안의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문득, 가냘픈 여자애의 목소리가 천천히 퍼져나왔다.









[ .....쫑기. 사랑해. 이 말 꼭 해주고 싶었어. ]









나 : 으흑.... 흐으윽..... .....으억... 윽.... ....유하야.... ....유하야......





악착같이 메꾸고 보수해둔 눈물댐은.

여지없이 붕괴되고 말았다....

피맺힌 목소리로, 목구멍 깊숙히부터...

아니, 폐부를 찢어내듯 고통스러운 흐느낌으로....

수문이 열려버렸다.....






나 : ....미안해.... 으흑.... 어억... 으흐엉.... 사랑... 해줘서... 흐윽... 고마워.... 이제...
나도... 흐윽, 흑.... 너... 보내줄게.... 나 때문에... 으헉... 억.... 못가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나는 사랑했던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천천히 배워나가야만 했다.







시간이라는 약을.....

그리움이라는 상처에 차츰씩 투여하면서.







나 : 사랑해..... 유하야......




[은유하] Vol. Epilogue




Dear. 사랑했던... ....아니지. 사랑하는 내 여자친구 유하.



바보야, 나다.

지낼만하냐, 거기? 킥....

거긴 프링글스 있을지 모르겠다....

물 바뀌면 배탈부터 나는 애라서... 밥이나 잘 먹고 다니려나...




얼마전까지, 니가 가버린 지 며칠째인지...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사일...

....꼬박꼬박 셌었거든? 근데 까먹었어... 아니, 안세려고 하다 보니까... 억지로 억지로 그러니까...

잊어지더라. 풋.... 무신경한거 알잖아, 나. 그냥 힘들게 굴러다니다 보니까... 잊어지더라구.

이상하게 너라는 애는.... 너무 또렷하게 가슴 한 구석에서 상처처럼... 그렇게 돋아있는데...





나 벌써 23살이야. 알아?

니가 19에 나 냅두고 갔으니까... 년수로는 딱 4년이네.

좋겠다, 넌? 안늙어서... 난 벌써 늙는다는게 뭔지 제대로 느낀다. 하하하.

나중에 언제 네 곁에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너보다는 나이 엄청 먹어있을테니까...

하늘 사람들이 원조교제라고 놀려대겠네. 킥킥... 팔팔한 영계랑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한번... 와봤어?

아아, 그냥..... 마지막 편을 두드리는데.... 내 옆에서 라벤더 향이 나길래.

코감기 제대로 걸려가지구... 코 막혀서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는데.... 라벤더 향이 났어.

설마 아직도 그 바디클렌져로... 막 샤워하고 그러는거 아니지?

거긴 더 좋은 향 얼마든지 있을거잖아. 천국향, 극락향... 뭐 이런건 없나... 킥킥...

근데, 그 향기가 나는 것도 몇초 안되서 없어지니까.... ...괜히 좀 아쉽더라?

.....한 몇분 정도는.... 더 있다 가지 그랬어.... 바보야. 성격 급한 애도 아닌게.....




...하....

하고 싶은 말, 진짜 많았는데... 막상 너무 오래간만에 너한테 편지를 쓰려고 하니깐....

그냥 머리만 띵하고 아무것도... 안떠올라.

나 건망증 심하다고, 너 맨날 놀렸잖아.... 구구단 맨날 시키게 하고.... 우리 부모님이랑 너희 부모님

생일 막 외우게하고.... 그 덕분에 이젠 절대로 안까먹지만....

좀 옛날에, 그러니까... 니 22번째 생일 이었을 때....

그 때 나, 동해갔었어. ....너 잘있나 볼려고.... 휴가 나갔거든...

거기서 나 구구단 다 외우는거.... 니네 부모님 생일 다 기억하는거... 너 들었으려나 모르겠다.

하긴... 바다가 좀 넓어야지... 젠장.

너 한... 20%는 서해 가있겠고... 한 20%는 남해 가있겠고... 또 한 20%는 벌써 태평양까지 가있겠다.

....바다 그렇게 좋아했었으니까... 잘됐잖아... 그치? 맘껏 돌아다녀...

너랑 사귈 때는 한번도 바다 데려가준 적 없었는데... 그렇게라도 위안 삼아야 내가 편하지...





....멍청아....

그러길래 내가 뭐랬어....

까불거리지말고.... 들뜨지말고.... 몸 조심하라고 했잖아....

원장 선생님 말 굳이 다 듣지말고.... 너하고 싶은데로 세종대만 시험 보라고 했잖아...

....그러겠다고 해놓고.... ....거긴 왜 시험보러 갔어? ....응?

하필 또 왜 그 버스야.... 화장실 들렀다가 한 3분만 늦게 나왔어도... 다른 버스 탔을거잖아.

평소에는 부지런도 안떨던게.... 꼭두새벽부터 준비하면서 극성일 때 알아봤어야 되는건데....

......쳇....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너 안보내야됐는데....

...그래야됐는데.... .....니가 그날... 시험을 안보러갔으면.... 아니, 내가 딱...

전화통화 10분만 늦게 끌었어도.... 지금 내 옆에 있는거.... 유하 너 일텐데...





너... 박살난 버스안에 있으면서... 울면서 애타게 나 찾을 때동안....

나 뭐했는줄 알아?

...그시간에 나... TV보고 있었어. 그것도 싸구려 개그 프로.

그거 보면서... 배꼽 빠지게 웃고 있었어.... ....너 죽도록 아프고 무서워하면서.... 나 찾을 때....

나.... 병X같이... 그렇게 웃고 있었어.... 그리고 나 9시 뉴스 볼 때까지 몰랐어.....

니가 식어갈 때 동안.... 난 하나도 모르고 있었어.... 나 부르다가 지쳐서... 울다 지쳐서....

그렇게 눈 감으려고 할 때.... .....나.... 아무것도 몰랐어.....

염병... 나, 진짜 아직도 그게 용서가 안돼... 너 알아?




.......너 가고 난 다음부터 석달동안 하도 울어서 이젠 눈물같은거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아직 남아있나봐....

주책맞게 또 흐르네.... 누가 보겠다... 씨....

근데 닦을 수가 없어.... 왠지 이거 닦아내면... 흐르는거 닦아내면....

그 땐 진짜 멈출 수가 없을 거 같아서....

....미친듯이 울고 싶어질 거 같아서...

그래서 못 닦겠어... 그냥 꾸역꾸역 삼키면서... 흐르게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어....






나, 부탁 하나... 해도 돼?

안된다고 하지말고... 여지껏 꿋꿋하게... 잘 참았으니까...

상으로 하나만 들어줘...





.....딱.... 딱 지금 한번만 와주라...

더도 안바랄게... 지금 딱 한번만....

와서... 좀 봐봐. 니 예전 남자친구... 얼마나 웃긴 꼴로 질질 울고 있는지....

....나 이렇게 놔둘거야? 벌써 4년째 되려고 그러는데... ...아직도 놔둘거야?

와서 안아줘야지.... 머리 쓰다듬어줘야지.... 뽀뽀 해줘야지...

그래야 되잖아... 바보같은 기집애야....

나 프링글스도 사놨단 말야... 너주려고..... 니가 제일 좋아하는 빨간색 통에 들어있는거...

그거 사놨단 말야...

그거 줄테니까...

백개줄테니까... 천개도 줄 수 있으니까....

...제발 한번만 와라.....

......인조인간 같은 얼굴이라고 안놀릴게... 밀가루 인형이라고도 안놀릴게.....

이젠 맨날 애교 떨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줄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딱 한번만.... 아니, 하루만... 아냐... 그것도 안되면 한시간만....

너 아직 하늘에서 나 내려다보고 있는거... 내가 다 알아...

모를 거 같지...? 나는 다 알아....

그러니까 그만 애태우고.... .....나 그만 미치게하고.....

한번만.... 나보러 와.... 응?







....사랑해....

사랑해 유하야.

....다 잊어먹었다는 거, 거짓말이었어 사실....

이젠 너 안보고 싶다고 했던거... 그것도 왕 구라야. 킥....

100일 휴가 나가서 하늘에다가 다 말했었잖아.... 기억 안나는 척 하기는....

괜히 삐졌으니까.... 소심쟁이...

잊으려고 애쓸 수록 너무 선명하게 떠오르고....

안보고 싶다고 억지 쓸 수록.... ......너 웃는 얼굴 한번만 다시 보고 싶어서...

하루에도 수백번씩... 그렇게 미쳐있는다?

....너 아마 내가 이럴줄은 몰랐을거다... 하하하....





......부디... 내가 두드린 스무편 남짓의 이 글들이...

네 마음에 들었기를 바래..... 너 주인공하고 싶댔지...? 이거 니가 주인공이야....

.......원래.... 같은 대학.... 들어가면....

입학 선물로 만들어주려고 했던건데....

...같은 대학 들어가서 같은 과해서... CC하면... 그 때... 만들어주려고...

준비 진짜..... 열심히 해뒀던건데....






..........유하야. 유하야. 유하야.

은유하야... 유하야... 유하야.... 유하야... 유하야......

....씨.... .....야!!! 은유하!!!!!




잘먹고 잘살아라!!!

나 없이.... 나 없이도...

얼마나 잘사는지 볼거야, 내가..... 진짜...

늙고 늙어서 할아버지 될 때까지... 그대로 지켜볼거야.....

...그러니까.....




내가 못해줬던 거....

다해보면서.... 살아... 거기서.

...그러면서... 나 기다려주라....

용기없어서... 너 먼저 보내놓고 뒤따라 못가준 나 실컷 원망하면서....

...그렇게 조금만 기다려줘.....







사랑해....

사랑해.......

이 세상에서...

절대로 못만날 것 같았는데....

....사랑이라는 거...

확인시켜주고, 직접 경험하게 해줘서....

고맙고, 그 점 역시도... 사랑해.





좋은 꿈꾸고..... 감기 조심하고..... 나도 이제..... 그만 들어갈게.

아... 그리고...

별이랑 장난 좀 그만치고... ....어젯밤에도... 긴거 하나 떨어지더라....

장난기는 많아가지고 여자애가.... 그래가지고... 어디 시집이나 가겠냐. 하하....

물론 내가 데려가겠지만... 난 왈가닥 안받는다.

참하고 다소곳한 여자 좋아하는거 알잖아....

킥킥.....








......어...?

설마.... 와있어....?!







....라벤더 향.....

.......내 앞에서 느껴져......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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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불출
아 ... 쪼끔 슬프네요 - _-..; 젠장... 세드엔딩을 제일 싫어하는데 [...] 그래도 다행인건 이건 소설인거죠! 현실을 느껴라 - _-)r~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06-04-01
14:39

220.89.xxx.
유망불출
아 'ㅅ' 그리고 플래티님 그동안 글 올려주시느라 수고하셨고 감사했습니다 ^ ^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06-04-01
14:40

220.89.xxx.
kjw8843
아....너무 슬프네요......그동안 올려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끝까지 잘 읽었습니다....눈물이 주루룩..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06-04-01
15:31

220.81.xxx.
yusu03
정말로 잘읽었습니다.. 이글 알려주셔서 감사하구요,, 왠지 오늘은 차분한 느낌의 하루가 될것같아요..^-^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06-04-01
15:37

24.181.xxx.
플래티넘브론드
이거 실제 있었던 일이랍니다.. 이거 쓰신분이 혼혈여대생 모모, 7years 란걸 먼저 쓰셨는데 전부 은유하라는 실제 인물을 생각하면서 썼던 글이에요..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06-04-01
16:53

203.132.xxx.
유망불출
ㅁㄴㅇㄻㄴㅇㅇㅁ 말도안되 소설이라고 위안삼고있었는데 .. 가슴아프잖아요 ㅇ_ㅠ .. 진짜 눈물나잖아요 ..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06-04-01
17:19

220.89.xxx.
jjm10634
진짜 잘읽었습니다. ...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06-04-02
01:18

58.227.xxx.
733277555
아... 이렇게 끝나는구나.. 아쉽다 ... ㅠ.ㅜ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06-04-02
22:09

210.113.xxx.
kimjusick
세드엔딩...슬프네요...실제 일이라고하니 더 슬프네요...아... 읽으면서 소름돋네요...진짜 슬프고 이글 주인공 이신분.....힘내세요..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06-04-05
17:57

58.226.xxx.
runoohg
이 글은 03년 8월군번인 한종기씨가 군대 인트라넷 게시판에서 게시판 글입니다.. 진짜.. 군대에서 168연대 예전 인트라넷 홈페이지에서 인기리에 연재했었죠.. 아 오랜만에 보니 정말 감동입니다.. 한종기씨 요새 그냥 학교만 다니던것 같은데..^^;
00 추천 반대 댓글 삭제 신고 2006-07-03
19:02

59.6.xx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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